[광화문에서/허승호]KTX 타보셨습니까

  • 입력 2007년 4월 25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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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로 한국고속철도(KTX) 승객 누계가 1억 명을 돌파했다. 2004년 4월 1일 개통했으니 만 3년 만이다. 세계 고속철도 사상 전례가 없는 대기록이다. 요즘 KTX 경부선은 좌석이용률이 83%나 돼 주중에도 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는 서울∼대구 거리 이상의 장거리 여객 중 KTX를 이용한 비율이 56%에 달했다. 버스 승용차 비행기 등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압도적 우위다.

우리 국민의 KTX 사랑이 극진해 보인다. 하지만 철도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장항선(천안∼장항)의 한 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5명이다. 그렇지만 역장이 있고 역무원도 2명이나 된다. 당연히 적자다. 인근 주민들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시외버스가 있는데 하루 두 차례 운행하는데다 가고 싶은 곳에 제대로 데려다 주지도 못하는 기차를 굳이 이용할 이유가 없다. 또 웬만한 집은 승용차를 갖고 있다. 전국 644개 역 중에서 하루 이용객이 10명 이상인 곳은 290개에 불과하다. 한국철도공사는 교통 환경의 변화로 ‘공익적 기능’을 상실한 이들 역을 내심 없애고 싶지만 철도노조와 해당 지자체의 반발로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도 철도는 사양산업이다. 한국에서는 KTX 경부선 말고는 모든 노선이 적자다.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와, 먼 거리는 비행기와 경쟁하기 힘들어서다. 화물수송에서는 트럭 및 선박과의 경쟁에서 뒤진다. 그런데 일본의 신칸센, 프랑스의 TGV, 그리고 한국의 KTX 등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300∼1000km 구간의 여객 수송에서는 철도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우리 철도를 되살려 낼 좋은 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철도의 발전은 세계 질서의 새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국은 동아시아 경제의 90%, 세계 경제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과 베이징, 상하이를 이을 때는 비행기나 배가 편리하지만 중국의 동북 3성이나 러시아 극동지역은 철도가 훨씬 낫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4개 당사국이 물류를 철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국이 동북아의 한 중심축이 되려면 우리 철도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대륙횡단철도(TCR)와 연결될 미래를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다 철도는 수송량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승용차의 절반 이하, 트럭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에너지 소모는 승용차의 6%, 버스의 26%, 트럭의 11%다. 안전성과 신뢰성도 뛰어나다.

하지만 철도공사가 기업으로서 생존할 수 없다면 이런 얘기는 하나마나다. 철도공사는 현재 부채가 10조 원이다. 작년에 적자를 5300억 원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전까지는 매년 1조 원의 적자를 냈다. 2005년 1월 공기업으로 전환한 후 경영 합리화에 박차를 가하고 서울 용산 역세권 개발 등 새 수익원 발굴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무엇보다 철도공사와 임직원들이 관료적 타성에서 벗어나 적자 역과 노선부터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구조조정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현재 정선선(증산∼아우라지)은 1000원을 벌려면 3314원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철도는 소중한 자산이지만 철도공사의 미래는 밝지 않다. KTX 개통 3주년과 승객 1억 명 돌파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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