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진심은 역시 통한다

  • 입력 2007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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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진심은 통하는 걸까.

총기 난사 참극 4일째인 19일 밤 버지니아공대의 추모게시판에 들렀다가 15분 거리의 래드퍼드대 정치학과 학생인 존과 게일을 만났다. 두 사람은 그날 진행된 ‘특별한 수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부생 30여 명이 듣는 이 강좌는 통상적인 ‘강의형’ 과목이라고 했다. 예정에 없던 토론수업이 마련된 계기는 CNN방송에 조승희의 이모할머니가 출연해 “참 미안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교수가 먼저 ‘동양(한국) 문화의 어떤 요소가 한국인에게 이 문제를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가’라고 물었다. 지척에서 일어난 참극인 탓에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어 온 학생들은 한국의 집단 사과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일은 “온 한국인이 나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미국에선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높이 평가할(respected) 만하다”고 말했다.

“소수 의견일지라도 ‘미국 학생을 죽인 것은 외국인’이라는 견해는 없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비슷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두 사람의 전언에 따르면 토론수업의 결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한국은 독특한 공동체 의식 때문에 ‘15년 전 고국을 떠난 한국인의 잘못에 한국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믿는다. 이 행동은 진심 어린 것이며 다른 계산이 개입되지 않은 것이다. 이 한국적 현상은 인터넷과 통신위성을 타고 지구촌 구석구석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래드퍼드대의 청년 정치학도들은 한국의 마음 씀씀이와 문화를 ‘낯설지만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느꼈다.”

한국과 서구사회에는 문화적 차이가 엄존한다. 그렇다 보니 협상장과 경제 현장, 관광지에서 불필요한 오해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문화적 다양성이 나라 사이에 쉽게 전파되는 오늘날의 ‘글로벌 3.0’ 시대에는 변화의 조짐이 느껴진다. 이질적 문화체계가 보낸 ‘낯선 신호’가 왜곡되는 요인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물론 이번 ‘집단적 미안함’처럼 진심이 담기고, 충분한 분량의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인이 반한(反韓) 감정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우(杞憂)였던 것 같다. 적어도 인구 1만6000명의 소도시에 있는 한 대학의 토론수업에선 분명 그랬다.―래드퍼드(미 버지니아 주)에서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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