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아이랑 감정교류 잘되나요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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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초등학교 교문 앞에 솜털이 보송한 병아리, 등딱지가 아직 말랑한 거북이 등장했던 것 같다. 곧 죽을지 모른다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집으로 데려왔다가 금세 죽어 버려 슬퍼했던 기억을 우리 모두 갖고 있다. 요즘은 어떤가. 집에서 잘 키우던 멀쩡한 병아리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로 던져 버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야단을 치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다. 별다른 느낌도 없다.

무한경쟁에 감정 무감각한 아이들

동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주변 사람의 감정, 심지어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아이들의 무지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한 파악과 조절이 어려운 것은 물론 자기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기업에서조차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로니컬하게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대해 무지한 아이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의 일상을 생각해 보자. 학교와 학원가를 전전하며 끊임없는 경쟁 상황 속에서 팽팽한 긴장을 경험하다 집에 돌아오면 주로 TV나 컴퓨터에 매달린다. 부모 역시 바쁜 일상에 쫓긴다. 동시에 다른 아이에게 뒤지지 않도록 경쟁력을 갖춘 아이로 키우는 데만 총력을 기울인다.

바쁜 부모와 바쁜 자녀의 만남에서는 오늘은 뭘 배웠니, 몇 개 틀렸니, 다른 아이들은 어떠니 등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화만이 오간다. 뭘 느꼈고, 어떤 감정이었고, 다른 사람의 기분은 어떤지와 같은 정서적이고 추상적인 대화는 찾을 수 없다. 부모와 아이의 일상에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성만을 강조하는 성적 지상주의의 무한경쟁 풍토에서 1등이 아니라는 패배감으로 아이들은 쉽게 무기력해지고 끊임없이 좌절한다. 무력감, 분노와 좌절, 우울함을 어루만져 줄 부모를 갖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무뎌져야 하고, 남의 기분과 처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외국에서 이렇게 무감정하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6세짜리 아이가 단지 월요일이 따분하다는 이유로 초등학교에 총을 난사한다거나, 익사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9세짜리 아이가 이웃 아이를 물에 빠뜨리고 의자에 앉아서 즐기는 사례 등이다.

감정 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국은 심리전문가와 정부, 사회단체가 연계해 2001년부터 ‘어른 아이 모두 함께(ACT·Adult and Children Together)’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감정 문제의 효율적 해결을 통해 감정에 무감각한 아이의 공격성에 대응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어린시절 부모와 교감이 중요한데…

캠페인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부모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서 능력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는 심리학자들의 강한 주장에 근거한다.

그저 똑똑하고 이성적인 아이만 행복한 미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우리 스스로 무한경쟁에서 아이가 겪는 좌절과 해결되지 않은 부정적 감정에 무감각하진 않았는가? 또 어른들의 감정에 대한 무지와 인간관계의 유대에 대한 평가 절하가 아이들을 감정 불감 세대로 양산하진 않았는가? 무엇보다 감정이란 사람 간의 유대와 관계에서 비로소 제대로 경험되고 발달될 수 있고,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감정 교류 경험이 가장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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