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사랑이 한국에 오는 다리 되었죠”

  • 입력 2007년 3월 28일 03시 01분


유명 발레 스타가 국내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한다.

러시아 거장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이 이끄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였던 벨로루시 출신의 스타 무용수 알렉세이 투르코(28·사진)가 앞으로 1년간 서울발레시어터(SBT)의 주역 무용수로 무대에 서는 것.

김인희 SBT 단장은 “투르코와 1년간 SBT에서 활동하기로 24일 계약했다”며 “SBT 공연에 우선적으로 출연하되 공연이 없을 때는 다른 단체의 공연도 할 수 있으며 급여 등 대우는 일반 주역 무용수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발레리노는 10여 명으로 대부분 발레학교를 막 졸업했거나 코르 드 발레(군무) 출신의 신인들이다. 투르코처럼 세계적인 단체에서 활동한 주역 무용수가 국내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투르코의 한국행을 성사시킨 ‘일등 공신’이 평범한 무용 팬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계약은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투르코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블라디미르 말라호프에게서도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지난해 맺었던 한국 팬들과의 인연으로 내한을 결심했다.

투르코는 “지난해 알게 된 한국 팬들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SBT를 알게 됐다”며 “SBT는 아내와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끌렸고 한국에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도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발레리나인 그의 아내 올가(27)도 이번에 SBT 단원으로 1년 계약을 했다.

투르코는 지난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보리스 에이프만 내한 공연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춤으로 무용 팬들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의 춤에 반한 팬 15명의 모임인 ‘엔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공연장을 빌려 그의 단독 내한 공연을 성사시킴으로써 공연계의 새로운 ‘팬덤문화’로 주목을 받았다.

투르코는 “여러 무용기획사에서 공연 초청을 받았지만 일반 팬들에게서 직접 초청받은 것은 처음이라 아주 행복했고 무용수로서도 크게 감동받았다”며 “앞으로 한국 생활에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팬들의 사랑을 떠올리면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경기 시흥시의 지하철 4호선 정왕역 인근 원룸에 둥지를 틀었다. 발레단에서 한 시간 걸리는 곳이지만, 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팬들이 마련해 준 보금자리다. 월세는 그가 해결하지만 보증금부터 컴퓨터와 가구 및 집기는 그를 한국 무대에서 보고 싶었던 ‘엔젤’들이 또다시 십시일반 모금해 해결했다.

‘엔젤’의 대표이자 그의 내한을 추진한 박유림(31) 씨는 “좋은 한국 무용수들이 국외로 빠져 나가고 남자 무용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런 발레 스타가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러시아어 통역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투르코지만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대목에서만큼은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투르코는 5월 5, 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내와 함께 ‘나비 파드되(2인무)’로 국내 팬들에게 첫인사를 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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