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반기문 총장에 행사참석, 인사 청탁 쏟아진다

  • 입력 2007년 3월 14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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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 유엔 본부를 출입하는 한국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1월 임기를 시작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후광 효과'다.

얼마 전에는 미국 기자 한 명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반기문 총장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다. 반 총장이 대학 재학 중 반(反) 정부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반 총장의 세계관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 사회참여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한 외국 기자는 "반 총장이 어떻게 부인과 만나서 결혼했느냐"며 "반 총장에 대해 입수할 수 있는 영어 자료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한국 기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자들이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반 총장의 아프리카 순방을 동행 취재하기 위해 유엔을 비웠다가 지난달 초 오랜만에 유엔에 들르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중국 기자가 다가오더니 걱정하는 말투로 물음을 던졌다. "얼마 전 유엔 출입 기자단에서 반 총장이 한국 경찰에 경호원 파견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사실인가."

유엔 경호원을 믿지 못해 자신의 출신 국가에게 별도 경호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만약 사실이라면 분명 유엔 수장으로서는 적절치 않은 행동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반 총장이 한국 경호원을 요청한 게 아니고 지난해 반 총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경찰청이 반 총장에게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이 잘못 알려지면서 생긴 오해였다.

어느 한국 TV 방송사는 "유엔 총회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다"고 유엔 사무처에 협조 요청을 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유엔 사무처 관계자는 "빈곤문제나 여성문제 같은 유엔의 설립목적에 맞는 회의에는 빌려줄 수 있지만 특정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총회장 공간을 빌려준 적은 없다"며 곤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요즘 유엔 주변에서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반 총장은 취임 이후 각종 행사참석, 기고요청에서부터 인사 청탁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요청이 쏟아져 이를 거절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게 사무국의 전언이다.

반 총장은 얼마 전에 한국 특파원들과 마주쳤을 때 고향인 충북 음성에 세워질 예정이라는 대형 석제조각상이 부담스럽다는 뜻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는 "총장에 취임한지 불과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뭔가 이룬 업적도 없는 시점에 조각상부터 세우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본부에 걸리는 역대 사무총장 초상화도 현직 재임 중에는 걸리지 않는다. 임기가 끝난 뒤에야 제작에 들어간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민으로서 한국인이 그에게 자부심과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무대에 우뚝 선 반 총장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문제는 반 총장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애정이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할 때 "어떤 국가에게도 치우치지 않겠다"고 선서를 한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출신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그에게 '한국을 잊지 말라'는 심적 부담을 지우는 대신 '세계를 위한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 되길 원한다'는 말없는 격려를 보내는 것이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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