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일부, 성급하게 앞서 나가는 이유 뭔가

  • 입력 2007년 2월 20일 2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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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어제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첫 번째 전략 목표로 내세웠다. ‘2·13 베이징 합의’의 후속 조치라고는 하나 너무 성급하다.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고 해서 ‘평화가 보장되는 평화체제’가 자동으로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인 한반도 비핵화와의 선후 관계조차도 설정이 안 된 상태다.

친북 좌파세력은 벌써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니 평화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북아 평화체제로 연결하기 위해서 한미동맹을 ‘전략적 동반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려면 북이 약속대로 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하나 여전히 미지수다.

북의 고농축우라늄(HEU) 핵 개발 계획만 해도 우리 국가정보원조차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어제 HEU가 향후 북핵 협상에서 결렬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이 평양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평화체제 구축부터 외치고 있다.

통일부는 “비핵화를 위해서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외교안보연구원은 “오히려 북의 핵 폐기 지연과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차례나 열렸던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도 북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외교안보연구원의 김성한 교수는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체제 논의가 진척될 경우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말대로 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후자가 너무 앞서 가지 않아야 한다. 평화협정의 당사자인 미국도 ‘선(先)비핵화, 후(後)평화협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통일부가 평화체제에 매달리는 것은 사안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거나, 아니면 ‘민족공조’에 기대겠다는 뜻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여 남북 정상회담의 길을 닦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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