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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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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자는 2년 가깝게 권부(權府)를 출입하다 보니 ‘별’이 다섯 개나 달렸다. 취재해 보도한 기사와 관련해 큰 별(민사소송) 하나에 작은 별(반론보도 청구) 넷을 달았다. 집요하기로 정평이 난 A 기자는 별이 늘어 가면서 취재 열의가 식어 가는 듯했다.
그의 변모를 보면서 ‘전략적 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전문가들이나 아는 난해한 법률용어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전략과 소송이라는 단어의 조합만으로 어렴풋이 그 뜻은 짐작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한 방책이나 술책을 의미하는 전략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소송과 결합함으로써 변질됐다. 한국과 민주주의를 결합한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랬듯이.
전략적 소송은 미국에서 유래했다.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이 비판하는 언론이나 시민을 위협해서 재갈을 물리려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피해 구제가 아니라 취재를 막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일반 소송과는 차이가 있다.
권력을 지녔거나 정보를 지배하는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이 꼬투리를 잡아 소송을 내면 언론사와 취재기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소송이 제기되면 재판정의 피고가 되고 방어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이나 대기업이 소송을 내면 취재 과정에서 별 잘못이 없더라도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적당한 선에서 취재를 그만둔 일이 있다고 털어놓는 기자가 많다.
이를 미국의 학자들은 ‘얼어붙게 만드는 효과(chilling effect)’라고 한다. 대기업의 전략적 소송이 남발되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24개 주(2005년)가 이를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공론 형성에 지장을 초래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 폐해는 심각하다.
한국에선 거꾸로 정부기관이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함으로써 전략적 소송 규제 논의에 불씨를 지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30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국회 차원에서 여야가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본보는 4년 6개월을 끈 법정 공방 끝에 국정홍보처가 낸 반론보도 청구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했다. 전략적 소송의 냄새가 짙은 이 소송에서 정부가 패소함으로써 소송비용 등으로 3000만 원이 넘는 혈세가 날아갔다.
국정홍보처는 25일 국정브리핑에 “사설과 칼럼에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고 오해해선 안 된다”고 강변하는 글을 띄웠다. 기자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뒷골이 쑤신다. “전략적 소송이 아니다…”라며 꼬투리를 잡아 또 반론보도를 청구할 것만 같아서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3년 6개월간 언론을 상대로 610건의 중재조정 신청을 했다. 당시 이 통계 수치를 보도한 신문의 제목은 ‘노 정부, 이틀에 한 번 언론에 시비’였다. 노 대통령은 최근 신년연설에서 대선 하루 전이라도 부당한 공격에는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했다. 대선의 해를 맞아 청와대 홍보실과 국정홍보처 간부들에게 독전의 나팔을 부는 것만 같다.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언론과의 전쟁’은 그의 임기 막바지에도 끝이 나지 않을 것인가.
최영훈 국제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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