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순]담배소송, 정부책임 끝나지 않았다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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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나 끌던 담배 소송은 우여곡절 끝에 1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이 났다. 판결의 근거가 의학적인 상식에 배치된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법적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1심 재판부는 담배로 인한 흡연자 피해에 대해 정부나 담배회사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고 전적으로 흡연자 본인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흡연-폐암 인과관계 법적 인정

정부나 담배회사가 법적인 책임에 대해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해서 과거 전매청 시절을 거쳐 담배인삼공사를 통해 제조 판매한 담배로 불구가 되고 생명을 잃은 100만 명이 넘는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까지 면한 것은 아니다. 도의적인 책임은 법적인 책임보다 더욱 강력한 양심의 책임이다.

이번 판결에서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한 점은 담배회사가 제조 판매했던 제품이 폐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과학적 결과를 법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의학계는 담배 연기가 40여 종의 발암물질과 4000여 종의 화학물질을 포함해 암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오래전에 밝혀냈다.

담배회사는 담배의 발암성, 독성 그리고 의존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태도를 버리고 담배의 해로움을 구체적으로 소비자에게 알려야 할 뿐만 아니라 담배를 더 많이 팔기 위한 광고와 판촉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

흡연자가 법원 판결을 혹여나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내용으로 오해할까 두렵다. 흡연의 피해 여부는 의학의 영역이지 법원이 결정하지 않는다.

흡연자는 이번 판결을 흡연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심사숙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모든 것이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도의적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흡연의 피해를 알고 금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흡연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흡연자의 73%가 금연을 희망하고, 지난 1년 동안 이들의 78%가 한 번 또는 그 이상 금연을 시도했다. 매년 정초가 되면 흡연자의 50∼55%가 금연을 새해 목표로 정하고 실제로 금연을 시도한다고 한다.

이 중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3∼5%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실패한 후 죄의식을 느끼면서 다시 담배를 피운다. 비록 판결에서는 니코틴 의존성이 자유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하다고 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금연은 자기의 의지만으로 하기보다 전문가의 상담이나 금연보조제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률이 10배나 높아진다. 정부는 73%나 되는 금연 희망자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도의적인 책임의 일부라도 진다는 자세를 취하기 바란다.

금연 희망자들 적극 지원해야

국내의 담뱃값(갑당 2000∼2500원)은 선진국(6000∼1만2000원)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 담뱃값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정책은 흡연을 장려하거나 금연 의지를 약화시킨다.

국회의 반대로 담뱃값 인상이 어렵다고 하는데 의원들은 금연 희망자의 의지를 꺾고 흡연을 지속하게 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쉽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하는 정책도 간접흡연의 피해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흡연자의 금연 동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금연지역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이미 입법청원이 된 법안은 10년 내에 담배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 법안을 조속하게 심의 제정할 때 흡연 피해자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김일순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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