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성호]2007년, 관건은 민시(民是)다

  • 입력 200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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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은 17대 대통령 선출을 통해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임을 확인하는 자축(自祝)의 한 해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1987년 민주화의 소중한 결실을 다시 한번 만끽할 기회다. 그런데 민주시민의 벅찬 자긍심 대신 막연한 불안감이 새해 벽두를 감도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우리 유권자 다수에게는 꿈이 있었다. 이제껏 나라를 이끌어 왔던 정치세력, 그 익숙한 얼굴들에 지치고 실망했을 때 그들을 대체할 참신한 얼굴, 젊은 사자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80년의 폭력적 야만과 1997년의 국가적 파산을 딛고 건강한 대한민국이 오기를 꿈꾼 유권자들의 탓일까. 그때 그 참신한 얼굴이 집권한 지 4년 만에 그 염원은 간데없고 염증(厭症)만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염증은 바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 국민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의 감언(甘言)과 이설(利說)에 솔깃하기에는 솔직히 못 볼 걸 너무 많이 봤다. 현 집권세력의 총체적 무능과 자기파괴적 독선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에 대한 반사이익에 기댄 채 환골탈태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바 없는 현 야당도 오십보백보다.

민주화 20년, 또 맞는 대선의 해

물론 둘러보면 ‘심층 민주화’와 ‘통합 선진화’라는 미래화두가 나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길로 매진하기에는 사회적 합의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반면 여야가 선점을 경쟁할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된 선진화의 꿈을 좇기에는 그 실천적 내용이 아직 모호하기만 하다. 합의가 쌓이기에도, 내용이 채워지기에도 올 한 해는 너무 짧다. 하물며 대선이 이럴진대 개헌이야 오죽할까.

정치학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미래지향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대선에서의 표심이 과거에 대한 심판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에게 최선(最善)을 선택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투표’를 바랄 수 있을까.

그렇다면 17대 대선에서는 ‘과거회고적 투표’를 통해 차악(次惡)이나마 가려낼 필요가 있다. 아쉬운 대로 미래에 대한 미몽은 접고 이미 잘 알려진 과거의 행적만이라도 냉철하게 따져 보자는 얘기다.

다행히 우리 국민 앞에는 심판할 거리가 많이 쌓여 있다. 올해로 어언 민주화 20년이다. (상대적) 보수와 (상대적) 진보, 각각 10년의 세월이면 보여 줄 건 다 보여 줬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얼굴을 내세워 또 어느 세력이 집권하건 과거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보는 게 상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도 이제 ‘그들의 과거’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유추해 내는 민지(民智)를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17대 대선의 의미는 대한민국 민주화 20년에 대한 좌사우고(左思右考)다. 광복 60여 성상(星霜)의 더 긴 숨으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공과를 비교해 봐도 무방하다. 핵심은 보수와 진보의 대차(貸借)를 표를 통해 대조(對照)하는 데 있다. 그 국가적 부기(簿記)의 결과, 다음 정권이 우로 날건 좌로 날건 그 역시 국민 다수의 선택이요 그 업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민주시민의 주권행사에는 무릇 엄정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다만 대선의 해를 영신(迎新)하는 지금, 모두 같이 다잡아야 할 마음이 하나 있다. 올 한 해를 국민적 성찰의 시간으로 삼겠다는 각오, 더 나아가 진솔한 성찰의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작정이 그것이다. 그 성찰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20년의 영욕(榮辱)을 각자 회고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성찰의 결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보수와 진보의 얼굴에서 자신의 초상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표심과 개헌은 그런 연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자기성찰 통한 주권 행사를

2007년의 관건(關鍵)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중한 자성(自省)이다. 그래서 새해 벽두부터 새삼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새겨 본다.

“그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한 국가가 지향하는 규범적 가치의 총합을 국시(國是)라고 한다. 민주화 시대에는 민시(民是)가 곧 국시다. 지금은 민시를 고민할 때다.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연세대 교수 sunghoki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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