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적’ 毒… 그 치명적 진화의 역사

  • 입력 2006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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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다이옥신도 종종 암살용 독극물로 쓰인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시 야당 후보로 나섰다 다이옥신에 중독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중독 전과 후의 얼굴이 심하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사진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치명적인 독소를 뿜는 보툴리누스균과 만지기만 해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내는 옐로 레인 계열인 니바레놀 독의 화학식(아래).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다이옥신도 종종 암살용 독극물로 쓰인다.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시 야당 후보로 나섰다 다이옥신에 중독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중독 전과 후의 얼굴이 심하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사진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치명적인 독소를 뿜는 보툴리누스균과 만지기만 해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내는 옐로 레인 계열인 니바레놀 독의 화학식(아래).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23일 영국 런던의 유니버시티칼리지 병원의 한 병실. 영국에 망명한 전 러시아 연방보안부(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몇 분 뒤 숨을 거뒀다. 영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 병원에 입원한 지 불과 엿새 만의 일이다.》

○ 알파선이 독성의 원인

리트비넨코의 사인은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폴로늄210 중독으로 판명됐다. 퀴리 부부가 발견한 이 물질은 독성이 강한 알파선(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결합한 헬륨 원자핵)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용으로 쓰이는 베타선이나 감마선과 달리 알파선은 전기를 띠고 질량이 커서 분자와 부딪치면 전자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

폴로늄210이 내는 뜨거운 열은 리트비넨코의 세포 조직을 일순간에 파괴했다. 140W의 높은 에너지를 가진 알파선이 유전자(DNA)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공유결합을 하나 둘 끊어 버린 것이다.

결국 대량의 알파선에 노출될 경우 세포가 파괴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켜 천천히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전문가들은 폴로늄의 독성을 청산가리의 2억5000만 배로 추정하고 있다.

폴로늄이 내는 알파선은 투과성이 약해 검색을 쉽게 피해 나갈 수 있다. 또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도 138일이어서 길게는 5년까지 몸에 남아 천천히 생명을 잠식한다. 그만큼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폴로늄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물질이다. 세계적으로 한 해 100g 정도가 원자로나 우라늄 광산에서 생산된다. 영국의 수사 당국이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을 용의선에 올린 것도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이런 물질을 얻기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독성이 강한 알파선을 내는 방사성 동위원소로는 폴로늄 외에 라듐, 라돈, 토륨, 비스무스, 우라늄 등이 있다. 이 물질들이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인 콜로이드 형태일 때는 주로 간과 비장을 통해 흡수되며 라듐 용액은 뼈, 라돈 가스는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서울대 핵의학과 정재민 교수는 “이들 물질은 치사량을 투입해도 하루 이틀 만에 목숨을 잃지는 않으며 보통 몇 주∼몇 개월에 걸쳐 합병증을 일으킨다”며 “극소량일 경우 몸에 끼치는 해가 적어 미국에서는 암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옛날 암살자들은 어떤 독을 애용했을까? 조선왕조실록만 해도 독살에 관한 많은 기록을 담고 있다. 태종 2년에는 왕이 신하들에게 독살을 명령한 얘기가 나와 있고, 세종 6년에는 다른 사람의 국에 독을 넣어 살해한 범죄를 심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암살에 사용된 독은 짐새(중국 광둥 성 일대에 사는 독이 있는 새)나 하돈(복어), 비상, 부자 등 대부분 천연물에서 뽑아낸 것들이다. 몸에 들어간 독은 위 조직을 통해 미세혈관으로 침투해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호흡곤란을 유발한다.

곰팡이도 얕잡아 볼 수 없다. 1980년대 이라크 정부가 쿠르드족에 사용한 ‘옐로 레인’은 땅콩이나 피스타치오 같은 아열대 지방에서 나는 견과류에 피는 노란곰팡이를 일컫는다. 이 독은 만지기만 해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방사능처럼 몸 안에서 증식 속도가 가장 빠른 골수로 침투해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 독살의 연대기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치명적인 독은 밀폐된 깡통에서 발견되는 보툴리누스균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완전히 멸균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남은 균들이 공기와 접촉이 끊기면서 치명적인 독소를 내뿜는 것. 찻숟갈 하나 정도(약 5g)면 약 4000만 명의 목숨을 앗을 수도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체대사연구센터 류재천 책임연구원은 “모든 물질은 고유한 독성을 갖고 있기 마련이며 결국 치사량에 이르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합성한 독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나치 독일이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에게 사용한 ‘치클론B’다. 이 물질은 독성이 강한 시안화수소가스로 원래는 살충제로 사용됐다. 냉전시대에 암살자들은 탈륨 같은 중금속 물질을 사용하기도 했다.

류 책임연구원은 “최근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노 입자들이 작아져 세포막을 통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사람의 조절을 벗어난 미세입자들은 얼마든지 독성을 띠는 물질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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