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희]날 웃긴 뉴스

  • 입력 2006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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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를 인터넷으로 보면 기사 밑에 누리꾼 의견을 투표하는 난이 있다. ‘날 울린 뉴스’, ‘날 웃긴 뉴스’, ‘속 시원 뉴스’ 등으로 구분되는데, ‘날 웃긴 뉴스’는 좀 의미가 모호하다. 정말로 재미있고 웃겨서 날 웃긴 뉴스가 될 수 있고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어서 ‘날 웃긴 뉴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본 기사는 아마 후자에 속할 것이다. 미국 친구가 떡볶이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물어 와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작년 12월 6일자 기사를 보았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국민을 위해 각 정당 대변인끼리 만나서 떡볶이 집에서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날 웃긴다. 왜 하필이면 떡볶이 집이고, 왜 그 말이 뉴스가 되는가. 뒤집어 말하면 한번쯤 여의도에 즐비한 고급 음식점을 벗어나 소위 서민의 음식인 떡볶이를 먹어 보는 쇼맨십을 해 보자는 말이 된다. 안 하던 짓은 그냥 안 하면 되는데 하려다 보니 웃기는 기삿거리가 된다.

밑천도 못건진 멸치이야기

어느 정치인의 손님 접대 식탁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6만2000원짜리 코스 요리에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약 7만 원짜리 식사였다. 아마 국회의원 신분으로는 ‘평범한’ 식사였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자기 주머니에서 낸 식사는 아닐 것이다.

이에 연관돼 또 생각나는 ‘날 웃긴 뉴스’가 있다. 2년 전 총선 때 대전의 태평동 시장을 방문한 열린우리당 대표 이야기다. 어느 건어물 상가에 들러 멸치 맛을 보며 그는 “나도 멸치를 좋아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 따롱이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인이 발끈하며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강아지를 주다니요”라고 했다.

그는 곧 말을 바꿔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남은 것을 끓여 준다는 얘기였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에 상인은 “남은 것도 고추장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라고 답했다. 지금도 멸치 몇 마리 들어 있는 싸구려 밀국수를 못 먹는 사람이 허다하다는 걸 모르고 강아지를 내세우다 밑천도 못 건진 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올해도 이제는 막바지이다. 내년에는 대선이 있으니 올해보다 더 시끄러울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대선 주자가 누구든지 간에 다 자기가 얼마나 서민을 대표하는 인물인지 목청을 돋울 것이다.

전국의 재래시장이란 시장은 다 돌아다니며 안 먹던 떡볶이와 멸치까지 먹어 가며 상인의 투박한 손을 잡을 것이다. 그러고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불행한 서민의 삶을 살아 왔는지 들춰내면서 동정 내지는 능력에 대한 평가를 받으려 들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공평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행운이다. 뼛골 빠지게 일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위도식해도 온갖 행운이 겹쳐 풍요롭고 권세부리며 사는 사람이 쌨다.

선거 때만 되면 난 겁이 난다. 이제껏 나 몰라라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 세상에 오로지 나를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호의를 보이고 온갖 행사에 나를 장애인 대표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

마치 행사장에 플래카드와 꽃 화분이 필요하듯이 구색 맞추기로 목발이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갖다 놓는다. 선거가 끝나면 다음 선거 때까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지고 다시 평화가 온다.

선거에 이용되는 서민의 삶

떡볶이와 멸치. 하굣길의 초등학생에서부터 아들에게서 용돈 타 쓰는 할아버지까지, 아직도 1000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애틋하고 정감 어리고, 한 끼 7만 원짜리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재미삼아 들먹이기에는 너무 성스러운 음식이다.

가난과 장애도 마찬가지다. 힘없고 약한 자들이 고통스러워도 치열하고 성실하게 내일을 위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질곡의 삶은 ‘국민을 위해’라는 미명 하에 부와 권력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정치권이 얍삽하게 표 하나를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될 성역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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