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장막을 걷고 창문을 열어라

  • 입력 2006년 11월 30일 20시 20분


코멘트
“장막을 걷어라/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 보자.”

1970년대 암울했던 유신체제 아래서 가수 한대수 씨가 젊은이들을 향해 부른 ‘행복의 나라’다. 젊은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30여 년이 흐른 지난달 22일 세계적 경영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 박사가 대한민국을 향해 비슷한 노래를 불렀다. 그는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화상 강연에서 “세계는 지식근로자시대로 가고 있는데 한국은 산업시대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패러다임은 관료주의(官僚主義)와 국수주의(國粹主義)다. 관료주의는 규제 강화로 안에다 장막을 치고, 국수주의는 개방 반대로 밖으로 향한 창문을 닫는다. 불행한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남의 집에 가면 덕담(德談)을 하기 마련이지만 지난달 한국을 찾은 외국 전문가와 기업인들은 ‘쓴소리’를 많이 했다. 대부분 장막 치기와 창문 닫기에 대한 것이다. 프로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메가트렌드’ 저자인 존 나이스비트 중국 난징(南京)대 교수는 23일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기업을 통제하려는 한국 정부의 ‘규제제일주의’는 여전하다”고 질타했다. 규제로 경제적 자유가 위축되면 한국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스페인 인터불고그룹 권영호 회장은 애국(愛國)하는 마음으로 모국에 3000억 원을 투자한 동포 기업인이다. 지난달 초 부산에서 열린 한상(韓商)대회에 참가한 권 회장은 “말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지만 행정 지원은 기업하는 사람들의 의욕과 반대로 가고 있다. 내가 외국인이라면 이런 환경을 가진 한국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재정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한 ‘경제 5단체 건의 과제 처리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접수된 94건의 건의 가운데 수용은 13건에 그쳤다. 기업투자를 옥죄는 핵심 규제는 그대로라고 한다.

이처럼 안에다 장막을 쳐 대니 외국 돈이 한국을 피하고, 국내 돈은 외국으로 떠난다.

올해 1∼9월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75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 3년 연속 감소세다. 반면에 같은 기간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74억5507만 달러다. 지난해 67억1974만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장막으로 성장엔진이 꺼질 판에 외부로 향한 창문마저 닫자는 목소리가 넘쳐 난다.

22일 서울시내에서 벌어진 반(反)세계화 시위를 본 나이스비트 교수는 “세계화(개방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에서 이런 시위를 볼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한국 경제의 생명 줄인 수출마저 어렵게 만들자니 도대체 제 정신이냐는 질타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시장을 열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시장을 닫으면 성장률 저하와 높은 실업률 등으로 고통 받게 된다는 게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한국에 충고했다.

장막을 걷고 창문을 열려면 우리의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

코비 박사는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수에 대한 해결 방법은 즉시 인정하고 수정해서 교훈을 얻는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변명과 궤변만 늘어놓는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