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정호]업체보다 소비자 이익이 먼저다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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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통신 요금 부담이 줄어들 모양이다. 정보통신부가 유무선 통신제품 결합 판매를 허용한 덕분이다. KT와 SK텔레콤, LG텔레콤 등 주요 통신업체는 벌써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 케이블 TV를 결합한 상품을 계획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져서 기업은 골치 아프겠지만 소비자는 더 풍부한 제품과 낮은 가격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정부가 오랜만에 잘한 일이다. 우리가 기업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싸고’ ‘좋은’ 제품을 ‘풍부하게’ 공급받는 일이다. 정부는 기업이 앞 다퉈 소비자에게 싸고 좋은 제품을 공급하도록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값을 낮추려는 기업을 막아 왔다. 소비자인 국민 대다수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앗은 셈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규제의 명분을 가격 인하의 ‘약탈성’에서 찾아왔다. KT 같은 선두 기업이 가격을 낮춰서 나머지 경쟁자를 도태시킨 후 엄청나게 값을 올려서 소비자를 착취한다는 시나리오다.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실성은 낮다. 선두 기업이 값을 낮추면 후발 기업이 타격을 보는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를 위해서라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값을 올리는 순간 다른 경쟁자가 진입한다.

통신제품 결합판매 소비자엔 혜택

시장에 진입하려다가도 독점 기업이 다시 가격을 낮출까 봐 겁을 먹고 엄두를 못 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카고대에 근무하던 로트 박사는 실증 분석을 통해서 그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분석 대상은 IBM, 코카콜라 등 1963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에서 약탈적인 가격 인하로 의심받던 28개 기업이었는데 가격 인하가 약탈적 목적으로 이뤄진 증거는 찾지 못했다.

그런 기업이 비난을 받은 이유는 상대방 경쟁자가 꾸며 낸 이야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선발 기업으로 하여금 값을 못 내리게 하는 것은 소비자의 이익을 걱정하기보다는 경쟁력 없는 업체의 도산을 막아 주기 위함일 때가 많다.

가격 인하 경쟁은 좋은 일이다. 독점을 염려해서 가격 인하를 막는다면 기업은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값을 낮출 수 없다. 그건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일이다.

이번에 결합 판매를 허용하면서도 가격을 심사하겠다는 단서를 붙인 것도 한 업체가 값을 너무 많이 내리면 다른 업체가 쓰러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일 게다. 제발 그런 걱정은 하지 말기 바란다. 값이 싼 것이 소비자에게 왜 문제인가.

독점을 막겠다고 가격 인하를 막는 일은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는 일이다. 독점은 한 기업이 시장을 독식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런 위치를 이용해서 가격을 높이고 생산을 줄일 수 있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소비자에게 손해이다. 끊임없이 가격을 낮추고 생산을 늘리며 품질 개선에 힘쓰는 기업이라면 독점이든 아니든 칭찬받을 만한 기업이다. 정부는 독점 방지를 명분으로 가격 인하를 막아서는 안 된다.

정통부는 약한 정보통신업체의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이번의 결합판매 허용처럼 규제와 간섭을 풀어 경쟁을 촉진할수록 소비자 이익은 더욱 늘어난다. 산업자원부든, 건설교통부든, 농림부든, 교육인적자원부든, 공정거래위원회든 어느 부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생산자를 보호하려 하지 말고 소비자의 이익을 늘리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독점 막으려다 소비자 희생 불러

‘업자’에 대한 보호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년부터 짐 없는 손님은 콜밴을 탈 수 없다고 한다. 택시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소비자에게 이익인가? 휴대전화의 보조금을 주지 못하게 하는 일도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발 통신업자의 이익을 위해서다. 농업 보호, 자립형사립학교 억제, 중소기업 보호제도가 모두 생산자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를 희생하는 제도이다.

모든 정책의 기조를 소비자 이익의 관점에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길게 보면 규제의 폐지는 생산자의 이익이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하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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