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핵 군축은 불가능한가

  • 입력 2006년 11월 24일 02시 58분


코멘트
핵보유국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이 느끼는 궁금증이다.

과거 사례만 보면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은 핵 확산을 겁내 국제관리체제를 만들려고 했지만 옛 소련은 고사하고 동맹국인 영국의 핵 보유조차도 막지 못했다.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도 핵보유국에 가세했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연이어 핵실험을 했을 때는 양국에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

유일한 예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핵 폐기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다. 구미제국은 흑인이 통치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인 남아공의 핵 보유를 이슬람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핵 보유와 마찬가지로 묵인했다. 그러나 남아공에서 정권이 바뀌어 핵을 가진 최초의 흑인국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구미 여러 나라들에 새로운 위협을 뜻했다. 넬슨 만델라 정권의 핵 폐기는 새 정권이 구미제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과거 사례의 단순한 연장선상에서 보면 북한은 대형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한, 즉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핵 폐기는 있을 수 없다는 잠정 결론에 이르게 된다. 6자회담 재개를 앞둔 지금 북한의 핵무기 자진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각국 정부에 확산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핵 군축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국방을 핵무기에 의존하면서 다른 나라의 핵 보유를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처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핵무기로 괴멸되는 비참한 경험을 가진 일본은 국방을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존해 왔다. 핵무기 근절을 주장해 온 일본은 핵 억지의 수혜자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동족 간 전쟁이라는 비극을 경험한 한국은 남북 간 대화를 진행하려 하면서도 북한의 군사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의 핵전력에 의존해 온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핵 억지력이 한국이나 일본의 방위수단이라고 한다면, 북한으로선 최대의 위협인 미국의 핵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 개발을 진행해 온 것이 된다. 미국과의 군사 대결을 사실상 포기한 중국도 미국의 핵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핵무기에 기대고 있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국방을 핵에 의존하면서 가상적국의 핵무기를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핵 확산의 악순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각국이 국방을 핵에 의존하는 정책을 버리고 핵 확산을 핵 군축으로 반전시킴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이 핵 의존을 줄임으로써 북한의 핵 폐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를 북한에서 멈춰선 안 된다. 현재 중국은 군사적 경제적 우위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이 점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대중(對中) 경계심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중국의 핵 군축이 실현되면 일본 한국 미국 등이 핵에 의존할 필요성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없다는 판단은 자신의 핵 의존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상대방의 핵 개발을 용인하는 한심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에 일방적인 핵 군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의 핵 감축을 구체적인 정책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일본과 한국에는 핵 억지라는 불안정한 평화가 아닌 핵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