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용과 코끼리의 악수

  • 입력 2006년 11월 22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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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20개국 정상들과 경제협력 방안을 더 논의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북핵 이슈가 이런 시간과 기회를 날려 버리고 말았다.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기회비용의 일부다.

우리가 ‘북핵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중국은 계속 달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하노이 APEC 정상회의를 마친 뒤 21일 인도로 날아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손을 맞잡고 “중국과 인도는 친구”라고 했다. 1962년 국경전쟁까지 치렀던 두 나라가 “이젠 정치가 아니라 무역이고 경제”라고 외친 것이다.

두 나라를 ‘친디아(Chindia)’라는 신조어로 맨 먼저 묶은 것은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2005년 8월 22일자)였다. 특집기사는 “두 나라가 하나의 거인 친디아로 합쳐진다면? 정치적 경제적 야망을 가진 두 라이벌 사이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문자답한 바 있다.

기사는 “양국의 산업이 진정으로 협력한다면 세계 기술산업을 떠맡게 될 것”이라는 애널리스트의 유보적 코멘트를 붙여 놓았다. 2003년 동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던 인도가 중국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제안하긴 했지만 중국의 제조업에 겁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변화는 늘 예상보다 빠르다. 친디아의 ‘용상(龍象·용은 중국, 코끼리는 인도)’ 궁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잘 맞을 것 같다. 중국의 저임 공장과 인도의 정보기술(IT) 등 저임 연구소가 결합한다면 생산성이 크게 향상돼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투자를 엔진 삼아 연평균 9.5%의 성장을 보여 온 중국은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투자와 수출 드라이브를 감속하려는 중이다. 소비를 중심으로 연평균 6% 성장해 온 인도는 소비를 식혀 가면서 투자와 수출 열기를 높이려는 참이다. 그만큼 상호보완성도 높다.

이번 중국과 인도의 만남에서는 획기적인 경협 방안이 나오지 않아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라는 평가도 나왔다. FTA 협상 추진도 뒤로 미뤄졌다. 그렇다고 헤어지는 게 아니다. 우선 신뢰 쌓기 작업을 통해 그동안의 적대감과 의심, 갈등을 줄이자는 취지다. FTA 체결은 목표 연도인 2015년 이전에 마무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올해 예상치 220억 달러인 양국 교역을 2010년엔 두 배 수준인 400억 달러로 늘리자는 합의도 별 것 아니다. 그때면 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 정도에도 서방(西方)은 ‘수세기 동안 서방이 주도해 온 국제무역 시대가 끝나간다는 의미’라며 놀란다. 수십 년 안에 세계가 중국-인도-미국의 삼각체제로 재편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도 어쩔 수 없는 트렌드 변화다.

‘용과 코끼리의 악수’나 친디아 FTA에 대해 우리는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다. 인도는 우리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한미 FTA 협상에 자극받아 우리에게 조속한 협상 개시를 요청하고 있다. ‘북핵 골치’ 등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한미 FTA와 함께 우리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두 거인과의 FTA에 더 몰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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