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경제]정보부족 ‘역선택의 함정’에 빠진 거죠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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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장수진
일러스트 장수진
《우리의 삶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활동의 연속인데도 경제학은 왜 어렵기만 할까요? 좀 쉽게 배울 수는 없는 걸까요? 격주로 수요일자 E+에 게재되는 ‘청소년경제’는 부모와 청소년 자녀가 일상에서 흔히 겪는 평범한 사례를 통해 경제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동아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소곤소곤 경제’는 케이스를 통해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소곤소곤 들려줍니다. ‘논술로 풀어보는 경제’는 각 대학 논술시험에 숨어 있는 경제적 현상을 찾아 소개합니다. 또 자녀에게 부자 되는 경제습관을 심어 줄 경제교육 현장을 탐방해 소개하는 ‘이런 경제, 저런 교육’도 연재합니다. 어려서 몸에 밴 경제 습관은 자녀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경제 배우기,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요?》

● 사례

새내기 직장인 철수는 꿈에도 그리던 ‘마이카’와 첫 대면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운전면허 취득의 기쁨은 잠시, 아버지와 자형 차로 운전연습을 할라치면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급기야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면서 운전대를 완전히 뺏겼다.

“이 설움! 에라, 마이카로 보상하리라.”

철수는 올해 초 직장을 얻자마자 차를 장만하겠다는 일념으로 알뜰살뜰 한푼 두푼 모았다.

“새 차를 사려면 한참 걸리겠어. 쓸 만한 중고차를 사는 게 어때?”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가 조언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중고차 시장에서 사려 하니 왠지 중개 수수료가 아까웠다. 이때 한 광고 전단에 나온 중고차 모델이 눈에 쏙 들어왔다. 4년이 됐지만 4만 km밖에 달리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음향장치가 근사했다. ‘600만 원이면 가격도 적당하고, 대출 없이 살 수 있겠다.’

“사고 난 적은 없다고요? 가까운 정비소에서 점검받아도 될까요?”

이 말에 차 주인은 버럭 화를 냈다.

“젊은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의심나면 다른 차 알아봐요.”

‘아차차.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에이, 아저씨도. 혹시 몰라 드린 말씀이고요. 계약하시죠.”(철수)

그렇게 중고차를 장만하고 몇 개월 흘렀다. 주말마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갖은 액세서리로 치장했다.

‘흠, 전혀 중고차 같지 않아.’

친구들에게 “이번 주말에 내 차로 여행이나 떠날까”하고 말할 땐 어깨가 절로 으쓱했다.

지난주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릴 때까진 좋았는데…. 서너 시간쯤 달렸을까 갑자기 속도가 떨어져 간신히 갓길에 세웠다. 차를 견인한 정비소 수리공이 날벼락 같은 말을 했다.

“이 차 견적이 꽤 나오겠는데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이 곯았네. 사고도 한 번 난 것 같고. 근데 수리하면서 중고부품을 사용했네요. 기왕이면 정품(正品)을 써야 했는데….” ‘아! 나는 왜 이다지도 운이 없을까?’

● 이해

철수는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불량 중고차를 살 운명일까?

경제학에서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개살구 시장’으로 꼽힌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보기엔 번지르르 하지만 실상은 불량 중고차가 넘쳐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중고차 시장에서는 좋은 차를 만나기 힘든 걸까?

이유는 중고차 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중고차 정보는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거래당사자 간의 정보 차이가 클 때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분포한다”고 말한다.

재미난 점은 이런 상황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정말 피하고 싶은 상대와 거래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좋은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800만 원을, 불량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400만 원을 불렀다고 치자.

좋은 중고차와 불량 중고차가 각각 절반씩이고, 겉으로는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면 당신은 얼마에 중고차를 산다고 할까?

그렇다. 두 차의 중간 선인 600만 원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좋은 중고차 주인은 이런 제안을 ‘모욕’이라고 여길 것이다. 반대로 불량 중고차 주인은 밑지고 파는 거라고 거들먹거리면서도 속으론 웃을 게 뻔하다. 결국 시장에는 불량 중고차만 가득 남는다.

이처럼 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칠 때 바람직하지 않은 상대와 거래할 가능성이 높은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역(逆)선택’이라고 부른다.

역선택이 자주 발생하는 시장은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불량 중고차만 가득한 시장을 누가 이용하겠는가.

하지만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실제 거래에선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는 역선택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정보가 많은 사람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똑똑한 소비자라면 중고차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믿을 만한 정비소에서 정비를 요구할 것이다. 파는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뭔가 구린 데가 있다고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충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중개수수료를 내는 것도 좋다. 중개인은 일정 기간 무상수리와 같은 품질보증도 한다. 이런 노력이 ‘개살구 시장’에서 역선택을 막는 장치다.

박형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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