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아듀, 반기문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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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경복궁 건너편 안국동 쪽에 있는 R사진관은 25년 전에 생겼다. 사진관치고는 제법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사진관의 주인은 윤보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존영(尊影)을 촬영한 바 있다.

얼마 전부터 이 사진관의 유리창에 활짝 웃고 있는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대형 사진이 내걸려 있다. 그전까지는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우탄트 전 사무총장에 이어 아시아인으로선 두 번째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른 것을 사진관 측이 기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분단국가의 불리함을 딛고 유엔 최고위직에 오른 뜻 깊은 일에 나름의 축하를 보낸 것이기도 하다.

반 사무총장은 10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국의 외교사절과 유엔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락 연설을 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유엔의 임무는 과거 국가 간 분쟁 방지에서 국가 간 시스템 강화를 통한 인류의 복리 증진으로 바뀌고 있다. 사무총장으로서 가장 취약한, 국가들의 인간 존엄성 보호와 세계 안보 위협의 평화적 해결에 적극 노력하겠다.”

그러나 북한은 반 사무총장이 유엔에서 수락 연설을 한 지 꼭 6일 만에 공언한 대로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 후 숨 가쁘게 쏟아지는 핵실험 관련 뉴스들에 묻혀 그의 동정은 국내외 언론의 관심에서 밀려나 빛이 바랜 듯한 상황이 이어졌다.

유엔 사무총장이 어떤 자리인가. 40년 전 기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대통령에 비견되는 존재로 이름을 줄줄 외우던 지엄한 존재가 아니던가. 6·25전쟁 때는 유엔이 다국적군을 보내 피를 흘리며 남침을 막아 냈다. 바로 그 기구의 최고 책임자가 사무총장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배우지 않았던가.

그의 값진 성취를 우리가 너무 소홀히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한번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 사무총장은 광복이 되기 한 해 전인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60세가 되던 해인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이 되기까지 직업 외교관으로서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은혜를 한 몸에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지나친 관심과 속박에서 풀어 줘야 한다. 결코 그를 충북 음성의 아들이나, 대한민국의 장관에 계속 머무르게 해선 안 된다. 그가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그가 세계인의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내년 1월 1일 정식 취임할 그에게는 북핵 문제보다 아프리카의 기아나 지구 온난화 문제가 때론 더욱 중요한 현안일 수 있다.

외교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를 사무총장으로 만드는 데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나 우리 모두는 이제 “아듀, 반기문”을 외치며 그를 보내야 한다. 마음속으로는 성원하되 그의 관심이 한반도에 지나치게 머물지 않도록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줘야 한다.

끝으로 반 사무총장에게 법정 스님의 명상집에 나오는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수락 연설에서 밝힌 바 있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그가 성공한 사무총장이 되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5년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최영훈 국제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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