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금동근]유럽의 ‘이슬람 공포증’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요즘 유럽지역 뉴스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무슬림(Muslim)이다. 최근 일주일 치 뉴스만 봐도 그렇다.

‘무슬림 경관이 런던 경찰청을 상대로 인종 차별 소송을 시작했다.’(영국) ‘보안구역 접근 권리를 박탈당한 무슬림 직원들이 내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프랑스) ‘무슬림 지도자, 논란이 되고 있는 오페라 공연 초대에 불참 의사를 밝히다.’(독일)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무슬림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는 대부분 어두운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영국의 무슬림 경관은 정부 요인을 근접 경호하는 팀 소속이었다. 경찰청은 그의 두 아들이 다니는 이슬람교 사원이 테러조직과 연계됐다는 의혹이 있다며 그를 ‘보안에 위협적인 존재’로 분류해 해당 임무에서 제외했다.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 관리공단 측은 지난주 역시 ‘테러와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무슬림 직원 72명의 보안구역 접근을 금지했다. 사실상 해고와 같은 조치였다.

독일에서 상연 취소, 상연 재결정 등 논란을 거쳐 다음 달 상연되는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라는 작품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마호메트의 절단된 머리가 예수, 부처의 머리와 함께 등장하는데 유독 무슬림만 ‘종교 모독’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네덜란드에선 이슬람 교리에 따라 남자들과 악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여교사가 해고됐다. 덴마크에선 ‘마호메트 만평’을 실었던 신문사에 제기한 아랍 단체의 소송이 지난주 기각돼 또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뉴스를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다. 유럽에 만연한 이슬라모포비아는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9·11테러가 터진 곳은 미국인데 정작 이슬람권과의 갈등은 유럽 쪽이 더 심하다”고 지적할 정도다.

오죽 심각하면 교황청까지 몸을 사린다. 로마의 한 추기경은 5일 미사에서 “아주 민감한 방문을 앞두고 있는 교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교인들에게 당부했다. 이달 말 이슬람 국가인 터키를 방문하는 교황은 9월 이슬람을 폭력적인 종교로 묘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으며 그 바람에 지금까지도 이슬람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유럽의 토착민들이 이슬라모포비아를 겪는 체감지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높은 출산율을 배경으로 무슬림 인구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최대 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년 뒤에는 2배로 늘고, 2025년에는 신생아 3명 가운데 1명이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자연히 반작용도 따르고 있다.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는 “금세기 안으로 유럽은 무슬림 대륙이 될 것”이라면서 인종, 종교 차별을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과거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서구사회와 무슬림의 갈등이 이렇게 노골적이진 않았다. 오늘날의 심한 갈등은 ‘일자리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요인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는 무슬림 이민자들은 급진주의자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토착민들은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기고 있다며 무슬림을 더욱 배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멀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실업자가 늘고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에선 언제, 어떤 형태로든 구성원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깨달을 필요가 있다.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