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국민연금 시한폭탄 돌리기

  • 입력 2006년 9월 20일 2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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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 교수 등 국민연금 전문가 37명이 국회에서 4년째 표류하고 있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어제 발표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제도 개혁안을 심의조차 못하고 있는 여야 정당과 정부의 안이한 태도에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국민연금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진보 보수를 떠나 학자들이 사회 개혁 이슈에 대해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국민연금 문제는 절박하다. 고령사회는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로 닥치고 있는데 노인 부양 의식과 평생직장은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노후생활의 마지막 안전판이지만 ‘파산’이 예고돼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래 노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부채는 하루 800억 원, 1년에 30조 원꼴로 쌓이고 있다. 고스란히 우리 자식들한테 떨어질 몫이다.

정부는 2003년 ‘더 내고 덜 받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이의 처리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보여 온 모습은 비겁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표면적 이유는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제 도입이라는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노인과 장애인에게 재정(세금)에서 기초연금을 주고 나머지는 소득비례 연금을 적용하자는 한나라당 대안(代案)은 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이상적 방안이긴 하다.

문제는 돈이다. 한나라당은 이 제도가 시행될 때 세금이 얼마나 늘어날지 정확한 계산서를 제시해야 한다. 돈 문제 이전에 한나라당은 입만 열만 감세(減稅)와 ‘작은 정부’를 주장해 왔는데 기초연금제가 ‘작은 정부’에 맞는 효율적인 제도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지금의 잘못된 국민연금 체계가 한나라당 전신(前身) 정당의 집권기에 도입됐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원죄(原罪)’를 속죄하는 차원에서라도 국민연금 손질에 협조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립학교법 국가보안법 같은 이념성(理念性) 법안의 개폐(改廢)에는 당의 명운을 걸듯이 달려들었으면서 연금제도 문제만 나오면 야당 핑계를 대며 꼬리를 내린다. 정부는 한나라당 기초연금제 방안의 일부를 흡수한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는 내용의 새로운 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이 이 개정 법안을 내주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법안을 제출해 줄 여당 의원을 찾지 못해 복지부가 땀깨나 흘렸다는 후문이다. 전임 복지부 장관이 김근태 의장이란 점에서 여당의 개혁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면서 뒤돌아서면 표 계산에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 표리부동한 모습이다. 여당이 이 시점에서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연금 개혁에 소극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 원래 국민연금 개혁처럼 국민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는 정책은 집권 초기에 마무리 짓는 것이 성공 확률도 높다. 그러나 정부는 편 가르기와 언론과의 전쟁에 세월을 보내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차기 대선(大選)이 있는 내년에는 국민연금법 개정이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의 연금 개혁 방안이 옳은지는 국회에서 따질 일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가 국민연금을 개혁할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다. 국민연금 시한폭탄은 어느 당 집권기에 터질지 모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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