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정치판’ 방송위, 예고된 인사파동

  • 입력 2006년 9월 19일 02시 59분


코멘트
우여곡절 끝에 7월 14일 출범한 3기 방송위원회(위원장 직무대행 최민희)가 맨 먼저 한 일이 공영방송사 임원 인사였다. 그러나 임명 전부터 특정 인사의 내정설로 방송계가 홍역을 앓더니 임명 이후에도 자격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송위는 4일 EBS 사장에 구관서 전 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선임하기로 의결했으나 열흘 만인 15일 임명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구 내정자가 2000년 2월 석사 학위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비슷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구 내정자의 석사와 박사 학위 논문은 통계처리방법만 다를 뿐 주제와 이론적 틀이 유사하다.

지역과 방송학계 대표 자격으로 KBS 이사가 된 신태섭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다른 학자가 쓴 글을 상당 부분 그대로 옮겨 와 논문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KBS 노조의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신 이사는 11일 ‘KBS 이사회에 드리는 글’에서도 “H 박사의 글을 통째로 옮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방송위가 KBS 이사를 추천한 게 8월 3일이고 대통령이 임명한 것은 한 달 뒤인 이달 4일이다. 검증 기간이 충분했음에도 이런 문제가 걸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에는 방송위가 KBS와 MBC 이사로 추천 또는 임명했던 두 명이 인사가 발표된 지 2, 3주 만에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했다. 방송위는 1일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으로 이미 위촉된 노향기 전 한겨레신문 편집부위원장을 4일 EBS 이사로 선임했다가 후임자를 다시 임명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방송위도 인사 파행의 ‘피해자’다. 이상희 전 위원장은 물망에 오를 때부터 고령(77세)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고 이 전 위원장은 임명장을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건강 때문에 중도 하차했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방송위원 인선 과정에서 예견된 바 있다. 위원의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3기 방송위가 어느 때보다 여야 간 자기 사람 심기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정치 조직이 됐고, 방송은 정치판으로 변질됐다. 그 와중에 자격 시비를 일으키는 인사가 예사롭게 빚어지고 있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