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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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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의 ‘감사’ 자리는 외국계 펀드의 돈벌이 표적이다. SK㈜ 주식을 번개같이 매집했던 소버린은 국내 대주주를 얽매는 중국 여인의 전족과 같은 자학적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신나게 이용했다. 특히 감사위원인 사외이사 선임에 지분 3%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박탈하는 우둔한 한국적 족쇄를 만끽했다.
의결권 제한을 벗어나기 위해 국내 대주주가 지분을 분산할 때는 고율의 증여세와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며 자금 출처 조사도 큰 부담이 된다. 그러나 외국계 펀드는 세금이 없고 자금 출처를 묻지 않기 때문에 지분 나누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최태원 회장 일가는 20%의 지분을 보유했으나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3%의 의결권밖에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5%의 지분을 가진 소버린은 펀드를 분할해 의결권을 전부 행사했다. SK㈜ 임직원이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표를 모아 간발의 차이로 경영권을 방어했던 것이다.
소액주주의 지분 때문에 경영권 탈취에 실패한 소버린은 이번에는 대주주의 지분이 높아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LG㈜의 지분을 7%나 매집했다. 필자는 작년 봄 한 일간지의 시론을 통해 구본무 회장 일가가 52%의 지분을 가진 LG㈜에 대한 공격은 3%로 의결권이 제한된 감사위원 선임을 노린 것임을 지적했다. 경제계와 규제개혁위원회 및 국회의원의 문의 전화가 빗발치던 중에 소버린이 SK㈜로 얻은 투자 이익을 챙겨 떠나면서 LG㈜ 지분도 처분해 버려 논란이 수그러들었다.
최근 소버린의 자문사였던 라자드가 운용하는 외국계 펀드가 대주주 지분이 72%나 되는 대한화섬을 공격하는 것은 좀 더 노골적이다. 국내 인사의 재주와 명성을 거액을 주고 임차해 이용하면서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과거 타이거펀드와 소버린이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십자군인 양 떠들다가 막대한 단기 차익을 챙겨 떠난 황망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
회사의 지분이 대주주와 외국계 펀드로 집중될수록 소액주주의 지분은 줄어들게 되고 지분 분할이 자유로운 외국계 펀드가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대주주 지분이 90%가 되면 외국계 펀드가 보유한 지분이 6.5%만 초과하면 다른 소액주주가 대주주 편을 들더라도 감사 자리는 지분 분할이 자유로운 외국계 펀드의 차지가 된다.
지분 6.5%가 지분 90%를 녹다운할 수 있는 것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형 감사 선임 제도이다. 특히 감사위원이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경우 의결권 제한은 대주주의 경영권에 대한 심각한 위해로 작용한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회계감사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감사로 선임하는 것이 정도다. 감사를 공로의 대가로, 돈벌이 수단으로 임명하거나 대주주의 발목을 잡아 이익을 뜯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부당하다.
공공기관의 경우 전문성과 독립성을 지닌 인사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적격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검증해 감사를 선임해야 한다. 민간기업인 주식회사의 경우 경영은 이사회가 전담하고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는 회계감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 감사가 사사건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는 적대적 지위에 서는 것은 조직의 목표 달성에 심각한 장해물이 된다.
외국계 펀드에 ‘대박’을 헌납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출총제 및 의결권 제한은 한시바삐 개선돼야 한다. 국내 주주와의 형평성을 위해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계 펀드에 대해서는 주식 매매차익을 정상적으로 과세하기 위한 관련 세법 개정 작업도 시급한 과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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