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현]차기정부에 죄다 떠넘길건가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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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하고많은 재주꾼 중에 왜 하필 곰인가, 밉기로는 일본인이 더할 텐데 왜 중국인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던 속담이다. 지금 와서는 곰의 미련함과 화상(華商)의 약삭빠름을 대비시킨 선인의 지혜와 해학을 짐작할 따름이다.

현 정부의 여러 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이 속담을 상기할 때가 자주 있다. 용산기지 반환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노태우 내지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됐다고 현 정부는 강변한다. 정책을 화려한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포장해 과실을 챙긴 것은 과거의 정부고 현 정부는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욕을 먹는 미련한 곰이 됐다는 항변이다.

최근의 정책 흐름을 보면 곰과 주인이 역전됐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시와 국민 여론의 반대, 헌법재판소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했다. 그에 따른 온갖 부담은 차기 또는 차차기 정부가 져야 한다. 선진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화려한 비전 2030을 발표했으나 20, 30대에 짐을 넘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주를 추구한다는 명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추진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전력과 재원 확보의 짐을 차기 정부에 넘겼다.

이뿐만 아니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진작 처리됐어야 할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는 결국 3년 동안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추세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도 차기 정부로 넘어가게 생겼다. 그러다 보니 누가 집권하든 차기 정부 또한 ‘재주는 누가 넘고 돈은 누가 챙기나’라는 푸념을 하게 생겼다.

왜 그런가? 두 가지 이유가 겹쳐서이다. 첫째는 현 정부가 정책문제를 정치적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책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고 나아가 집행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별개가 아니다.

현 정권은 처음부터 소수 정권으로 출발했다.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제도권 정치를 우회하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택했다. 정책의 내실보다는 외면을 강조하고 국민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제도정치권에서 크게 반발해 사사건건 여야가 대립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또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바람에 여론이 분열되면 결정을 유예하고 집행을 미루는 경향을 보였다.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니 여론도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국민을 위해서도, 정권을 위해서도 불행하다. 국정이 표류하기 십상이니 국민이 고생이다. 현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 또한 좋을 리 없다. 정권을 잡을 때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선전을 통해 잡을지 몰라도 정권에 대한 평가는 실적을 통해 받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이승만 전 대통령 이래 지금까지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정치발전, 경제성장, 남북관계 세 가지에 대해서였다. 노태우 정권이 세 분야 모두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민주화 혁명 이후 분출하는 국민의 욕구를 수합해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공고화에 많은 실적을 남겼다. 사상 초유의 무역 흑자를 이루는 경제 실적을 기록했다. 북방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적극 나서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기도 한 것이 노태우 정권이니 말이다.

노태우 정권과 현 정권은 대통령의 성 말고도 닮은 점이 있다. 바로 혁명과도 같은 정치과정 끝에 당선됐다는 점, 그리고 여소야대의 정치구조이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기획에 치중하고 집행은 제대로 못하는 정책적 패턴을 낳았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이렇게 보면 임기를 1년 반도 채 남겨 놓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진작부터 운위되는 소위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개발할 게 아니라 산적한 민생 현안을 꼼꼼히 챙겨 마무리 지어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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