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열린우리당 어깃장派

  • 입력 2006년 9월 10일 2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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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국회의원들은 축구를 할 때 패스도 잘 안 해줘요.” 5·31지방선거 참패 직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도부의 말을 안 듣고 개별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김근태 의장이 축구에 빗대 농담조로 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열린우리당을 보면 패스는 고사하고 다른 선수의 뒷다리를 잡거나 공을 아예 운동장 밖으로 뻥 차버리는 행태까지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관련해 여당 의원 13명이 다른 당 의원들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그중 하나다.

이들의 주장은 대통령이 조약체결권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정부가 협상 과정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동의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구체적 법리 해석이야 헌재가 하겠지만 조약체결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국회는 사후에 이를 심의하고 비준 동의 여부를 판단한다고 보는 게 상식 아닐까.

정부가 중요한 대외협상의 진행 내용을 일일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협상의 유연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의 협상카드가 새 나가 협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정부는 국회 FTA특별위원회에 거의 모든 협상 문건과 정보를 열람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더 희한한 것은 이의(異議) 제기 절차와 수법이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먼저 당 지도부에 제기해 논의 절차를 밟는 게 순서일 것이다. 당론은 아니지만 지도부의 방침이 ‘총론 찬성, 각론 협상 감시’인 점에 비춰 볼 때 문제 제기도 없이 대뜸 위헌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제멋대로다.

이들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가 좌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과속하고 있어 교통단속을 하려는 것이지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도부의 경고 조치에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 중 이인영 이기우 정봉주 강창일 유기홍 김태홍 의원 등 상당수는 운동권 출신이다. 여성단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사람도 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도 있다. 한 참여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는) 세계 역사상 최대의 코미디다. 나는 탱크 앞에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그 논리적 비약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당내 민주주의 절차도 무시하면서 운동권 식의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 지도부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도 한심하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국민이 먹고살 문제를 놓고 정부가 협상을 벌이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당론을 확정해 밀어 주는 게 여당의 본분일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에선 대통령의 양보 권유에도 불구하고 당의 정체성을 들어 ‘개정 불가’라는 당론을 고수하는 것과 대비된다. 사학법은 유재건 오제세 김혁규 의원 등 당 일각에서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한미 FTA 정책과 협상 진행을 감시하는 역할도 여당의 몫이긴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다.

9일로 김 의장이 당권을 맡은 지 3개월이 됐다.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개혁세력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했다”는 김 의장의 반성이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좀 더 분명하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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