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개인 자격으로 평양 간 이승만

  • 입력 2006년 9월 3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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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두루마기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는 떨렸다. “여러분 나와 같이 맹세합시다. 자유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울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국토를 튼튼히 방어하기 위하여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것이며 유엔은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1950년 10월 29일 오전 10시 45분 평양시청 앞. 국군이 평양을 수복(10월 19일)한 뒤 처음 평양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수만 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연설을 마친 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수행원들에게 “내 일생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개인 이승만’ 신분으로 평양 땅을 밟아야 했다. 그해 11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신익희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거기에 가시게 된 것도… 순전히 개인 자격으로 갔다 오셨다고 합니다. 우리 국토에 갔다 오는데 무슨 개인 자격이니 무엇이(뭐니) 있겠습니까마는 그렇게 미묘하게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제8회 국회 임시회의 속기록 제42호).

이 회의에서 박영출 의원은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으로 못 가고 개인 자격으로 갔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이 갖고 있는 유엔과의 모든 문제가 거기에 포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이 북한 지역에 대한 남한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한 언급이었다.

실제로 유엔 총회는 그해 10월 12일 임시위원회에서 채택한 결의문 3항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에 의해 유엔임시한국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할 수 있었던 한국 지역에 대한 효과적 지배권을 가진 합법정부로서 승인되었음과, 또한 결과적으로 한국의 기타 지역에 대한 합법적이며 효과적인 지배권을 가졌다고 유엔에 의해 승인된 정부는 없음을 상기하며…”라고 천명했다. 미국 역시 북에 대한 남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아 이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갈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 이상 흐른 지금도 유엔은 북에 대한 한국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북은 각각 독립적 주권을 가진 국가로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이는 북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북에서 통치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제법적으론 합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은 전시(戰時)작전통제권만 가져오면 유사시 우리 마음대로 북에 진주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이 최근 “전시작전권 환수에는 북한 붕괴 또는 전쟁 발발 때 북한을 수복하는 군(軍)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일 터이다. 작년 정부가 미국과 북한 급변사태에 관한 작전계획 5029 수립 논의를 중단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북에 대한 통치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정전협정 당사자로 주한유엔군사령관을 파견하는 미국과 전략적 대화 등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그런 외교적 노력 없이 “우리 땅”이라고만 외치며 작전권 환수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노 정권 사람들은 자주(自主)를 부르짖기에 앞서, 능란한 대미(對美) 외교력을 발휘했던 이 대통령이 넘지 못한 한계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한기흥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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