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비전 2030’ 꿈만 꾸다간…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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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한국사회는 성장 잠재력이 저하되고 국가 경쟁력이 하락한다. 패자 부활의 기회가 사라져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된다. 치매 뇌중풍 등 건강 문제를 걱정하고 연금 고갈로 소득 걱정을 하는 고단한 노후생활을 해야 한다. 아이를 더 낳지 않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고용불안 심리가 확산되지만 재취업 기회는 매우 제한된다.’

24년 후 한국사회에 대한 묘사다. 암울한 미래사회라는 뜻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지만 실은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 한국’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비전 2030을 추진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가 이렇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부 구상대로 하면 ‘삶의 질’ 세계 10위 국가로 발돋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일종의 경고요, 협박이다. 비전 2030만이 한국을 구할 ‘슈퍼 영웅’인 셈이다.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내놓은 것은 현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도 임기 말기인 1997년과 2002년에 각각 중장기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비전 2030을 질타하는 여론의 목소리는 앞서 두 정부가 비슷한 방안을 내놓았을 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높다.

그 이유는 현 정부가 3년 반 동안 보여 준 ‘실적’에 있다. 출범 첫해인 200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1%에 그쳤다. 2004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4.7%와 4.0%로 정부가 추정하는 한국의 잠재성장률(4.9%)에 매년 못 미쳤다.

정부는 올해 5.0%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민간 경제전문가 가운데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현 정부가 사실상 끝나는 내년 사정도 밝지 않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조차 최근 “내년 경제성장률은 4%대 중반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 후 임기 중 단 한번도 잠재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한 첫 정권이라는 ‘대기록’에 이미 바싹 다가서 있다.

비전 2030이 경고한 암울한 미래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들어설 정부들도 현 정부처럼 경제 활력을 바닥에 떨어뜨려 놓고 허황된 ‘장밋빛 복지국가’의 꿈만 꾼다면 말이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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