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창순]“낳아만 주세요,국가가 있잖아요” 이 한마디면…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3분


코멘트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일단 확산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매우 어려운 문화현상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산아 제한의 정책목표가 강했고 최단기간에 가족계획이 성공한 국가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셋째 자녀를 배제시켰던 규정도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개선된 점을 생각하면 우리 정책의 단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저출산 문제가 뒤늦게 인지된 이유는 여성문제에 대한 정책적 민감성이 낮기 때문이다. 출산, 육아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아닌 여성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화되면서 이미 1960년대부터 국가가 나서 다자녀 가정과 취업모를 지원했다. “낳기만 하십시오. 국가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는 말은 립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시행되고 있다.

여자들의 출산과 양육은 개인적 행위이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집단과 문화이다. 이제 전통적인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주의적 인생관을 앞세우면서 여성의 출산과 자녀 양육에 대한 사고와 가치관이 소리 없이 변해 버린 것이다. 무자녀 가치관은 사회 유행처럼 일시적으로 바람을 탔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자아실현 충족의 욕구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우리 사회처럼 자녀 양육의 부담이 물심양면으로 과중한 사회에서 무자녀 가치관은 인생에 대한 합리적인 계산과 생각을 하는 젊은 남녀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출산수당과 같은 정책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애초부터 자녀 생각이 없었던 여성이 100만 원, 1000만 원을 준들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정책은 무자녀관이 확고한 여성을 타깃으로 삼기보다는 자녀를 낳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성들의 부담을 덜어 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들어가는 여러 부담을 최대한 사회적 부담으로 전환시켜 출산과 사회활동의 병존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가정 안에서의 부부간의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 가사분담 문화 정착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벤트성으로 떠들고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당장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여성, 아이를 낳고 싶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망설이는 여성, 높은 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사회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은 단순히 언제라도 채워 넣을 수 있는 자원 배정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자리 잡고 나면 되돌리기 힘든 마음과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창순 경희대 교수 사회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