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려면

  • 입력 2006년 7월 6일 02시 59분


코멘트
올 하반기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신통치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 5% 목표의 달성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정작 보통 사람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일자리’와 ‘미래소득’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우면 예년보다 보너스를 덜 받는 수준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아예 내 책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겉보기에 실업률은 국제기준이나 이전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지만, 고용 안정성은 현저히 떨어진 상태이다. 청년은 청년대로 취업에 허덕이고, 중년은 그들대로 하루하루가 버겁다. 운 좋게 취업했다 해도 원래 원했던 곳에 안착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대기업의 평생고용 관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중소기업에 다니면 회사가 살아남아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리 없다. 통상 좋은 일자리란 돈 많이 주는 곳을 칭하는데, 평균적으로 금융이나 정보기술(IT) 분야의 직장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창출된 ‘괜찮은 일자리’는 총 14만 개로 2004년 30만 개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실업률을 근거로 노동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좋은 일자리의 증가세가 주춤하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금융산업처럼 기업 인수합병(M&A)이 한창인 경우 단기적으로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다. 주력 제조업의 경우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는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적극적일 리 없다. 자연 취업과 수성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돈 많이 주는 회사가 무조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학을 갓 졸업한 A 씨가 연봉 4000만 원 주는 중소기업을 마다하고 3000만 원 주는 대기업을 택한 것은 ‘평생소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생소득은 자신의 소득창출 능력에 달려 있다. 요즘 같은 IT사회에서는 대학이나 입사 후 연수에서 얻은 지식만으로는 오래 버티기가 어렵다. 꾸준한 교육훈련을 받으려면 대기업이 제격이다. 그런데 여성인 B 씨는 역으로 연봉은 떨어지지만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의 중견기업을 택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여성에 대한 장기투자에 인색하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평생소득의 관점에서 그들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이런 인적 자본의 관점에서 노동시장을 보면 수급 불균형의 원인과 대책을 이해하기가 쉽다. 우리나라 고용의 90%에 가까운 몫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사람을 기를 여력, 즉 교육훈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청년들이 기를 쓰고 대기업을 선호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솔직히 취업 희망자들이 국내 최고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급여를 많이 주어서라기보다는 그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갈 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기업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넘치다 보니 신입사원을 길러 정년까지 가기보다는 손쉽게 경력 있는 사람을 쓰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이런 취업 동향은 산업구조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전통제조업에서 IT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고 유통이나 금융 등 서비스산업의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산업의 연계 및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전통적 업종 구분이 모호해진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해외수주와 직접투자가 늘어나면서 기업 입지를 국가 간 수평적 분업의 하나로 생각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대기업은 글로벌 전략이나 막강한 연구개발(R&D)력을 통해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중국에 치이고 대기업에 외면당하며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정책을 산업정책이나 기업정책과 분리해 생각하기 힘들다.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을 기를 수 있는 대기업은 투자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중소기업에는 알량한 투자 지원보다 획기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을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고급 여성 인력이 살아남을 방도를 찾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사람이 살아남아야 회사도 좋아지고 나라 경제도 번창한다. 결국 사람이 경쟁력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