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모 아니면 도

  • 입력 2006년 7월 1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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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급식을 학교가 직접 책임지도록 법이 바뀐다고 한다.

대기업이 급식한 학교들에서 식중독 사고가 나자 그동안 잠자고 있던 법을 서둘러 통과시킨 것이다.

학교 직영으로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재원 마련이나 직영에 따른 부작용 등 앞뒤 세밀한 검토 없이 법부터 바꿨다.

학교에 급식시설을 지으려면 총 3000억 원 이상이 드는 데다 학교 공간도 부족해 ‘현실을 모르는 졸속 입법’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학부모도 걱정이 앞선다. 직영으로 바꾸면 시설과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각급 학교가 제대로 된 음식을 마련할 수 있을까. 혹시 문제가 있어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맞벌이 부부까지 배식에 참여하라고 하지 않을까.

차라리 위탁급식을 유지하면서 급식비를 올려 품질을 높이고, 3000억 원으로 식비를 보조하며 학교의 급식관리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 같다.

문제가 있으면 내용을 잘 살펴서 개선책을 내놓기보다 무조건 A를 B로 바꾸는 것은 한국인의 체질인가, 이 정권의 특징인가.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를 규제하고 공영형 혁신학교를 새로 설립하겠다는 방안도 그렇다.

교육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영형 혁신학교나 자사고나 특목고나 큰 차이가 없다(정부는 공영형 혁신학교가 선발이나 교육과정에서 자사고 등과 다르다고 강변하겠지만).

다만 공영형 혁신학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교육비가 공립학교 수준으로 저렴하다. 부잣집 학생이나 가난한 집 학생이나 똑같이 싼 학비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상컨대 이 학교의 도입은 정부가 학비 지원금의 대부분을 중상류층 가정의 학생들에게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만약 공영형 혁신학교를 설립할 돈으로 자사고나 특목고에 장학금을 지원하면 어떨까.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집이 어려운 학생들을 직접 도와줄 수 있다.

정부는 적은 돈으로 가난한 계층에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을 버리고, 더 많은 돈을 들여 불특정 다수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양극화 해소’에 반대되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서민들이 실제로 얼마나 혜택을 보는지가 중요하지, 정부가 직접 하면 공공을 위한 제도고 민간이 운영하면 영리사업인 것은 아니다.

기존 것은 틀렸으니 새것을 도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

청와대는 아일랜드식 사회 대타협부터 프랑스식 동거정부, 미국 민주당의 해밀턴 프로젝트까지 해외 모델 벤치마킹에 열심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경험을 진지하게 연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한국은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외국의 제도를 들여오기보다 과거 한국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다.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보지 않고 이름과 제도만 바꾸는 것은 개혁도, 혁신도 아니다. 공연한 잡음과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제발 껍데기만 이리저리 바꾸려 하지 말고 알맹이를 들여다보라.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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