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守舊회귀도 이념 곡예도 自滅의 길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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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방위사업청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질의에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 문제가 많다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사업이) 다 뒤집히고, 다 감옥 간다”고 했다. 국회의원으로서 입에 담기 어려운 막말을 한 것이다. 얼마나 문제가 있기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나 5·31지방선거 이후 오만에 빠진 한나라당 모습 그대로다.

지지율이 50%에 근접하고 내달 재·보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지면서 한나라당은 정권을 이미 잡은 것처럼 도처에서 거들먹거리는 분위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서도 당의 체질 개선 논의는 실종된 채 후보 간 인신공격과 야합설만 무성하다. 한쪽이 “특정세력과 가깝다”고 공격하면 다른 쪽은 “대통령 나오려다 안 되니 얍삽하게 당권에 도전한다”고 맞받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진흙탕 싸움만 한창이다.

정계 은퇴를 공언했던 의원이 식언(食言)을 해도 비판은커녕 당 중진부터 두둔하고 나선다. 김덕룡 의원은 부인이 4억 원의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조만간 정치적 거취를 밝히겠다”고 했으나 “대선에서 할 일이 있다”며 말을 바꿨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1000여억 원을 받아 불법 선거자금으로 쓴 강삼재 전 의원은 이 돈이 국가안전기획부 예산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재·보선 공천 신청을 했다. 그런데도 대표 경선에 나선 강재섭 전 원내대표는 ”내년 대선에 강 전 의원처럼 경험 많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측근인 이흥주 씨를 재·보선에 공천해달라고 당 관계자들에게 공공연히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병렬 전 대표도 공천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흘러간 옛 사람’들까지 제 밥그릇 찾기에 나서니, 유능한 인재가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불법 낙천낙선운동과 국가보안법 폐지, 탄핵반대 운동 등을 주도한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서울시 직무인수위원장에 앉혔다.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위의 지적에 그는 “나라를 위해서”라면서 “보수와 진보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대권 후보의 말처럼 들린다. 서울 시민이 그를 택한 것은 시장 일을 잘하라는 것이지, 한국정치의 스펙트럼을 걱정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5·31선거를 통해 드러난 유권자들의 요구는 분명하다. 무능한 ‘좌파 코드 정권’을 대신할 비전 있고 실력 있는 대안 정당이 돼 달라는 것이다. 좌우를 오가는 줄타기 곡예로 인기나 얻을 생각일랑 버리고 ‘개혁적 보수’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만 좋아지면 “한나라당이 뭐가 어때서?”라는 안이한 의식이 비집고 나오니 이런 가벼운 정당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론 수구(守舊)로 회귀하고, 한편으론 좌우를 오가는 기회주의 정당에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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