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 지휘 페도세예프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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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는 “이번에 한국에 가면 젊은 클래식 팬들과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 “현대음악은 한번 등장했다가 유행처럼 사라지지만 클래식은 말 그대로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는 “이번에 한국에 가면 젊은 클래식 팬들과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이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 “현대음악은 한번 등장했다가 유행처럼 사라지지만 클래식은 말 그대로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은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이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라는 타이틀을 뛰어넘는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74)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이탈리아어로 ‘거장’을 뜻하는 마에스트로(maestro) 외에는 그의 이름 앞에 붙일 마땅한 수식어를 찾기 힘들다. 그런 그가 11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6월 1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는 페도세예프 수석지휘자를 최근 모스크바의 국립문화방송(Culture TV)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1년 전보다 기량 더 안정된 ‘심포니의 요새’

전 세계를 바삐 다니는 그가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뷰 전날 스위스에서 돌아온 그는 한국, 일본 공연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단원들과 마지막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연습 도중 잠시 틈을 낸 그는 소탈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빡빡한 일정과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무색할 만큼 피곤한 기색을 찾기 어려웠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게 됐는데, 그동안 한국의 클래식 팬들이 우리를 잊지나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는 한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이번에 협연할 피아니스트 임동민(26) 씨 역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우리 차이콥스키(음악원) 출신 유망주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한국의 한 오케스트라를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빈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까지 맡고 있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

페도세예프 수석지휘자는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11년 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시는 옛 소련 해체 후의 혼란기여서 교향악단도 무척 어려웠던 때였지만 지금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오일머니로 러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회복됐다고 한다.

그가 33년째 이끌고 있는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은 서방에서 ‘심포니(교향곡) 문화의 마지막 요새(bastion)’라는 평을 얻고 있다. 그만큼 전통에 충실한 정통 교향악단이라는 것. 1993년 러시아 정부가 붙여 준 차이콥스키 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도 해외에 많이 알려져 있다. 옛 소련 시절에는 방송을 통한 연주와 음반 녹음에 집중했기 때문에 자체 아카이브에 방대한 음원을 소장하고 있다. 최근에 주력하는 것은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 이제 9번 교향곡 ‘합창’만 남겨 두고 있다.

○지휘는 기술이 아니라 “관객의 가슴에 파고드는 것”

그에게 단원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25∼30년씩 교향악단에 몸담은 단원이 수두룩하다. 서로 눈빛만 봐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악단의 분위기가 수많은 공연과 음반에서 한결같은 화음을 내는 비결이다.

페도세예프 수석지휘자는 ‘늦깎이 음악인’이다. 음악과 상관없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戰禍)를 겪어 어릴 때 체계적인 음악 공부를 하지 못했다. 기악 대신 지휘를 선택한 것도 음악 공부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일찍이 지휘에 소질을 보였다”고 농담을 했다. 어릴 때 거리의 취주악단을 따라다니며 막대기로 박자를 맞추면서 지휘하는 흉내를 내곤 했다는 것. 그네신음대 시절 은사가 “지휘에 재능이 있다”고 격려한 것이 인생의 길을 정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위치에 오르겠다는 꿈도 없었고 그냥 지휘가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휘자는 삶을 이해하고 연주자들의 마음을 읽고 객석의 반응에 대답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휘 기술이 좋아도 관객의 가슴까지 파고들 수 있는 지휘자는 많지 않습니다. 연주가가 지휘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위대한 연주가가 반드시 명지휘자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도 지휘를 시도했다가 포기했죠.”

이번 서울 공연의 레퍼토리는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곡으로만 짜여 있다. 좋아하는 작곡가를 묻자 페도세예프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곡만 (무대에) 올린다”며 웃었다. 그는 러시아 곡만을 고집하진 않지만 오랜만의 한국 공연이라 러시아 곡 위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방송교향악단이 탁월한 해석과 연주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차이콥스키 음악이다. 그는 “세계 어디서나 ‘나의 국적은 차이콥스키’라고 말하는 극성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차이콥스키를 통해 러시아의 영혼을 한국에 전해드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서울에서 만납시다.”

연습장으로 돌아가며 그가 남긴 인사였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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