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정권에 나라의 운명 맡길 수 있겠나

  • 입력 2006년 5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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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 관계자가 “우리의 운명을 미국에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몽골 발언’의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북한 관련) 상황이 안 좋으면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우리”라면서 한 말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국민이 언제 나라의 운명을 미국에 맡기라고 했나.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인 데다가 현실적으로 미국을 배제한 한반도 문제 해결은 상상하기 어려우니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해법을 찾아 달라고 했을 뿐이다.

현 정권은 국민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크게 미흡했을 뿐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다. 정부는 북한 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했음에도, 미국과의 불화(不和)를 증폭시킴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문정인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는 “노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한다”며 “이라크 파병, 전략적 유연성, 용산기지 이전 등을 다 들어줬는데 미국이 그렇게 나올 수 있느냐”고 했다. 금융 제재, 인권 문제 압박 등 미국의 대북(對北)정책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나가겠다는 얘기다.

위조 달러를 만들고, 세계 최악의 반(反)인권 상황을 개선할 기미도 없는 북한을 우리가 ‘독자적으로’ 엄호·지원만 하면 북한이 정상(正常)국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김정일 정권의 ‘시간벌기’만 도와주다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주변국들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우리마저 소외당하는 불행한 사태를 자초하지 않겠는가.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은 ‘미국이 북에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주고라도 핵 문제를 풀겠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이런 접근은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다. 지난해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북에 약속했다가 유야무야 되고 만 200만Kw 전력 지원이 바로 그렇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성과도 회의적이다. 설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DJ에게 6자회담 참가 의사를 밝힌다고 해도 회담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조지 W 부시 미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 기조는 남은 임기 3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엇나가는 ‘독자 해법’을 고집할 경우 한미동맹은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이다. 앞으로도 4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상당기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안보의 보루이다.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당장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을 떠나고, 우리 경제 전반이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흔들면서 한반도에 세우려고 하는 질서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국민은 불안하다. 임기 2년도 안 남은 정권이 국가의 운명을 놓고 ‘실험’이라도 할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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