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나는 고발한다, 법조계를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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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아야 정의로운 사회다. 그러려면 법(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법률 지식 부족으로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변호사에게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가?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소송과 관련하여 비싼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국민 3명 중 2명꼴로 변호사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사정이 이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우리나라와 미국 변호사의 소득을 두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비교해 보니 미국 변호사의 평균소득은 1인당 GDP의 4배가 안 되는데 우리나라 변호사는 무려 22배가 넘는다는 것이 숙명여대 신도철 교수의 연구 결과다.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불성실 소득신고를 감안하면 실제 차이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왜 우리나라 변호사의 보수가 이렇게 높은가? 주된 원인은 사법시험이라는 진입 장벽 때문이다. 해마다 3만 명이 넘는 응시자가 사시에 도전하지만 1000여 명만이 진입 장벽을 넘는 데 성공한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법률 서비스 수요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공급을 이렇게 제한하다 보니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변호사비는 비싸지고 변호사의 도움을 못 받는 국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팀 하포트는 ‘경제학 콘서트(Undercover Economist)’라는 책에서 진입 장벽의 문제점을 변호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는 많은 사람이 변호사 대신에 법률 지식이 풍부한 주변 사람에게 법률을 자문하고 그에 만족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변호사협회가 이런 대체서비스를 법으로 금지하고 변호사의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변호사의 고수입을 보장한다고 비판한다.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0%가 넘는 미국에서 변호사협회가 진입 장벽으로 비판받았다면 합격률이 3% 남짓한 한국에서 대한변호사협회는 하포트에게서 무슨 얘기를 들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법원과 대한변협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전체 입학 정원을 지금의 사시 합격자 수와 비슷한 1200명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법률 해석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갈리는 법조계가 진입 장벽을 통한 기득권 지키기에는 한마음 한뜻이다.

법률 서비스 수요는 변호사비가 내려갈수록, 그리고 GDP가 증가할수록 급격히 늘어난다. 신 교수는 이 수요 이론과 미국 변호사 보수에 기초해 현재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가 적정 변호사 수의 10%에 불과하다고 추산했다. 그는 변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연간 사시 합격자 수나 로스쿨 입학 정원을 최소 3000명 선에서 시작해 8000명까지 차츰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호사 수가 적정 규모에 가까워지면 서민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가능해진다. 구체적으로 유럽의 ‘법률비용보험(legal cost insurance)’ 같은 제도를 도입해 서민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거나 미국처럼 승소한 경우에만 변호사비를 지불하는 ‘성공보수제(contingent fees)’를 도입해 서민이 ‘무전유죄’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가능하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판검사의 ‘전관예우(前官禮遇)’ 기득권과 변호사의 진입 장벽 기득권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참여정부는 법조계에 ‘포획’되어 오히려 진입 장벽을 강화해 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가까운 예로, 법무부는 외국 변호사의 국내 진입과 활동을 규제할 목적으로 외국 변호사는 변호사라는 명칭 대신 ‘자문사(諮問士)’라는 명칭을 쓰도록 입법을 통해 강제할 예정이다.

한국 최고의 ‘냉철한 이성’을 갖춘 판검사들과 ‘따뜻한 가슴’을 내세우는 진보 법조인 가운데 기득권 포기를 부르짖는 인물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래서 나는 감히 대한민국 법조계를 고발한다. 기득권 지키기에 하나 되어 시장 경쟁을 저해하고 사회 정의를 외면한 죄목으로!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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