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경제를 ‘제대로’ 아는 총리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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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두고 ‘경제를 잘 안다’고 치켜세웠던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 전 총리는 이런 후원(後援) 덕에 ‘경제 대통령’ 노릇도 했지만 결과는 낙제점이었다. 정치 논리와 ‘이벤트 감각’을 앞세워 경제를 뒤흔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물러났지만 차기 총리를 위해 그가 빠졌던 ‘함정(陷穽)’ 몇 군데를 짚어보자.

이 전 총리는 작년 9월 8조6000억 원의 사회안전망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이 지지부진하자 부처 관계자들을 다그쳤다. “(각 부처가) 예산 5%를 못 줄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 부처에 그 정도 낭비성 예산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총리가 예산 낭비 행태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그의 말대로 5%라면 10조 원에 이른다. 정상적인 국회라면 이런 걸 모두 찾아내 삭감했겠지만 야당 의원과 총리 사이의 몇 차례 말싸움만으로 그냥 넘어갔다.

반면, 실세(實勢) 총리가 호통을 치자 공무원들의 움직임은 빨라졌고 그가 증액하려던 복지 예산이 척척 마련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몇 년 치 나라 살림살이는 더 왜곡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복지 예산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연초부터 ‘증세가(增稅歌)’를 부르기에 바빴다.

지난해 말 감세(減稅) 논쟁 때 이 전 총리는 ‘세금 깎아 주면 부자만 이득 본다’는 논리를 폈다. 선동적인 정치 구호였다. 균형 감각을 가진 총리라면 “지나친 세금은 깎고, 덜 거둔 분야의 세금은 더 걷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세수(稅收) 확대만 노린 ‘세금 폭탄’을 안기는 데도 더 신중했을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이래 놓으니까 정부는 최근 ‘(부동산 등에) 세금을 많이 물리면 부자들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 걸음 더 나갔다. 정부 스스로 ‘세금은 국민 모두가 내야 한다’는 개세주의(皆稅主義) 원칙을 부인하고 ‘세금은 부자에게 징벌적으로 물리는 것’이라고 외친 셈이다.

이런 총리 아래에선 경제부총리도 소신껏 일하기 어렵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작년 ‘8·31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때 이 전 총리가 만들어 낸 표현을 그대로 받아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고 했다. 제대로 된 경제 관료라면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미 훈장까지 받았지만 8·31 대책은 실패로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그 총리에 그 부총리’의 합작품을 우리는 지난 1년간 봐 온 것이다. 한 부총리가 이 전 총리에게 너무 쥐여 지내다 보니 경제정책 팀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이런 상황이 된 데는 이 전 총리의 책임이 더 크다.

총리는 경제 운용의 일선 사령탑으로서 경제부총리의 권능과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외풍을 막는 보호막이 돼 줘야 한다. 경제를 어설프게 아는 총리가 정치색 짙은 정책을 강요하거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너무 나가려고 해선 안 된다. 자칫하면 경제도 멍들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깨져 버린다.

이 전 총리는 한국 경제의 실상을 겸허한 자세로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옳았다. 문제의 소지가 많은 기업인들과의 골프로 온갖 의혹을 사면서도, 공식 행사 외에는 경제인들과 마음을 열어 놓고 만나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 대한 무례(無禮)다. 새 총리는 적어도 이런 식의 ‘이해찬 함정’에서는 벗어날 사람이어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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