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구호만 요란한 ‘학교폭력 추방’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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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와 경찰청은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중학교에서 학생대표 학부모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1000만 명 서명 운동’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법무부 행정자치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청소년위원회 서울시교육청 등 관계 기관의 대표도 대거 참석했다.

김 부총리는 “학교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피해자가 되는 사회 범죄”라며 “말 없는 다수의 학생이 힘을 모아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실천할 때 학교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육부와 경찰청은 이날부터 5월 31일까지 학교 폭력 자진 신고를 받는 한편 학생들에게서 학교 폭력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명과 함께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서명도 받을 예정이다. 피해 신고 학생에게는 비밀 보장은 물론 집단따돌림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명예경찰 소년단과의 결연, 서포터 지정 운영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런 일련의 대책을 보면 학교 폭력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학교 폭력에 대처하면서 선포식 운운하는 캠페인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국민재단’이 설립됐고, 교육부 업무 보고에도 ‘학교 폭력 추방’이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실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한 중학교 교사가 폭력서클 ‘일진회’의 실상을 폭로했을 때도 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 냈지만 지금도 그 대책이 추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 폭력 현장을 목격하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학교 등 관계 기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 규정에 대해서도 학교 폭력의 책임을 학교에만 지운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 규정은 교장이나 교사가 폭력 사실을 은폐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결국 학교의 주체적인 대처 능력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서명운동이나 캠페인 같은 요란한 행사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학교와 사회가 협조해 가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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