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소자 성추행’ 사과, 부하 뒤에 숨은 千장관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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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재소자 성추행 사건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문을 왜 홍보관리관이 대신 읽었나. 사죄하는 발표를 아랫사람에게 시키고 장관이 그 뒤에 숨은 것은 사과가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장관이 진정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정도로 심각한 사안에 대해 장관이 직접 나서서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은 잘못된 권위주의가 현 정부에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구치소 측은 여성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자살을 기도해 사건이 불거지자 “가석방되도록 좋은 점수를 주겠다”며 성추행 피해자들을 회유하거나 압박했다고 한다. 구치소의 집요한 은폐 시도로 자살 기도에서 진상 발표까지 19일이나 걸렸다. 교도관 이모 씨는 재소자의 출소(出所)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미끼로 12명이나 성추행했다.

이런 일이 다른 기관에서 벌어졌더라면 장관이나 기관장이 자리를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 장관이 자살을 기도했던 피해자와 가족을 찾아가 ‘불미스러운 일’ 정도로 표현하며 위로했다고 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부하에게 대독(代讀)시켜도 좋은 것은 아니다.

법무부 진상조사단은 피해 여성들이 고소를 거부해 교도관 이 씨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들은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봐 고소를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습적으로 재소자를 성추행한 범죄가 친고죄(親告罪)라서 처벌을 못한다니 국민의 법감정이 용납하겠는가. 변호사단체나 인권단체가 피해 여성들을 접견해 그들의 의사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천 장관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하고 성추행 교도관을 형사처벌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평소에 ‘민주와 인권’을 아무리 외친다 해도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표리(表裏)가 같은지 다른지 알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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