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벼슬 교수’와 시간강사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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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사무실에 교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문역을 맡겠다고 나서거나 장문의 보고서를 들고 오기도 한다. 당선 후 반대급부를 노리는 사람들이다. 선거 때마다 출마하는 교수들도 있다. 강의실을 장기간 비웠다가 낙선하면 태연히 강단에 다시 선다. 17대 국회의원 중에 교수 출신이 25명에 이르지만 대부분 대학에 사표를 내지 않고 휴직한 상태다. 양쪽을 오가겠다는 것이다.

▷학계 원로인 정범모 교수가 교수들의 ‘벼슬 욕심’을 나무랐다. 최근 저서 ‘학문의 조건’에서 정 교수는 ‘관변 기관에서 어떤 벼슬을 했느냐를 중시하고 치켜세우는’ 대학 풍토를 개탄했다. 장관을 하다 현직교수로 돌아온 사람을 ‘김 교수’가 아니라 ‘김 장관’으로 부르며 당사자도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고 한다. TV 출연, 위원회, 사회운동에 열중해 어느 게 본직인지 분간할 수 없는 교수도 꽤 있다고 한다. 어느 교수는 아예 학교 밖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있다고 한다.

▷김영삼 정부 이후 장관에 기용된 교수는 47명으로 전체 장관의 20%에 이른다. 현재 정부 산하 위원회의 40%가 교수들 차지다. ‘벼슬 교수’에 대해 정 교수는 “학문이란 벼슬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옛날 관학관(官學觀)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과거 합격이 최대 목표였고 낙향해서도 조정의 부름을 기다렸다. 그 정치지향성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문을 위해 존재하는 교수는 옛날의 선비와는 세월의 격차만큼 역할이 다르다.

▷‘벼슬 교수’의 뒤편엔 또 다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시간강사의 서글픈 처지다. 교수들이 휴직을 하고 정치에 나서면 그 자리는 저임금의 시간강사가 메운다. 자리가 비어야 교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이들에게 ‘교수자리도 아깝고 벼슬도 탐나는’ 교수들이 어떻게 비칠까. 자리를 바꿀 땐 그만둬야 옳다. 옛 선비정신에서 배워야 할 것은 수십 차례 관직을 사양했던 이퇴계 같은 대학자의 ‘물러남’의 미학(美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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