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현]전략적 유연성, 협력안보체제 발판으로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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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에 미묘한 긴장을 조성하고 국내적으로 적지 않은 논란을 초래했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양국이 합의했다.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군사전략 변화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는 한편, 미국은 ‘한국이 한국 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의 방침을 존중키로 한 것이다.

이로써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과시하고 북한 핵문제와 같은 안보 현안을 해결하는 데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이 예컨대 대만과 같은 한반도 이외 지역에 투입됨으로써 한국이 불필요한 분쟁에 연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세계전략의 핵심으로 한국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군사변환의 기본 논리는 군사력 이동의 속도를 높임으로써 유사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전력을 배가하겠다는 것이다. 즉 전 세계의 군사적 거점을 복합적 네트워크로 묶고 유사시 이들 간에 병력을 신속히 이동함으로써 탄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에 굳이 대규모의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더라도 신속한 병력 증강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공격을 억지할 수 있는 능력도 증가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동맹국의 발목을 잡아 가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면 주한미군이 다른 지역의 분쟁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연루의 위험이 전적으로 기우(杞憂)는 아니다. 그리고 특히 미국과 중국의 분쟁 때 한국이 어느 한편을 택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것을 우려하여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 “엄마가 더 좋은지 아빠가 더 좋은지 당장 답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좋을 따름이다. 대답을 다그치다가는 가족의 마음에 상처만 생긴다.

물론 아이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부모가 이혼하는 경우다. 이런 일은 가급적 막아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한지, 중국이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부모를 놓고 스스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어리석다(부모 얘기는 단지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일 따름이며, 미국이나 중국이 우리에게 부모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첫째, 우리에겐 미국도 중요하고 중국도 중요하다. 둘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체제에 편입하여 고도성장을 누리는 중국은 미국과 ‘이혼’할 의사가 없다. 셋째, 국민의 복지가 중국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도 굳이 중국과 ‘이혼’할 의사가 없다.

물론 국제정치의 속성상 미국과 중국의 갈등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1996년이나 2001년의 경우와 같이 군사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양국 사이의 문제고 양국이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이다. 미중 양국이 주한미군과 같은 지상군을 동원해 전쟁을 벌인다면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이다. 상황이 거기에 이르면 전략적 유연성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나라가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미리 가정하고 회피하는 소극적 전략이 아니라 그 상황을 미연에 예방하는 적극적 전략을 써야 한다. 지역 국가들 사이의 안보대화와 협력을 제도화하여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갈등 요인을 미연에 해소하며, 필요할 때 협동하는 협력적 안보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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