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6>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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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회남왕 경포가 굳이 군사를 이끌고 이리로 와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구강 땅은 서초(西楚)로 보면 등줄기나 발밑과도 같습니다. 구강이 적의 땅이 되면 서초는 등줄기에 칼이 들이대이고 발밑에 구덩이가 파이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 때문에 항왕은 그때로서는 가장 심복이던 경포를 구강왕으로 세웠습니다. 따라서 이제 항왕의 원수가 된 경포가 구강 땅을 온전히 되찾는 것만으로도 항왕의 근거지가 되는 서초에는 커다란 위협이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다만 회남왕 경포를 도와 그가 구강 땅을 모두 되찾을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됩니다.”

한왕이 다시 그런 진평의 대답에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인은 여기서 항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힘겹다. 무슨 힘으로 멀리 있는 경포를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대왕께서는 회남왕 경포를 돕기 위해 용맹한 장수와 날랜 군사를 갈라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필의 빠른 말로 두 갈래 사신만 갈라 보내면 회남왕은 오래잖아 구강 땅을 모두 되찾고 서초의 등 뒤를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갈래 사신이란 하나는 회남왕 경포에게로 가는 사신이요, 다른 하나는 양(梁) 땅에 가 있는 장군 유고(劉賈)에게로 가는 사신이었다.

한왕은 전해 경포를 회남왕으로 삼았으나, 말로만 가임(假任)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사신을 보내 제왕 한신에게 그랬듯 경포에게도 격식을 차려 회남왕에 오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옥새를 새기고 의장과 인수를 갖춰 성대하게 즉위하게 함으로써 구강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위엄과 정통성을 인정받게 하려 함이었다.

다른 한 갈래 사신은 장군 유고에게 노관과 헤어져 구강으로 가라는 한왕의 밀명을 전하게 했다. 노관은 양 땅에 남아 팽월이 초나라 군사의 양도를 끊는 일을 돕게 하고, 유고는 경포를 도와 구강 땅을 평정하게 함으로써 패왕의 등 뒤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진평이 그 두 갈래 사행(使行)의 임무를 차분히 들려주자 한왕도 비로소 그것들이 뜻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따를 뜻을 나타냈다. 힘을 얻은 진평이 또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제(齊) 초(楚) 사람들이 누번(樓煩) 사람들을 많이 불러 쓰듯 우리도 북맥(北貊) 사람들을 불러 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효기(梟騎)는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움직임이 빨라 천리 밖에 있어도 이웃의 병마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연왕(燕王) 장도(臧도)는 비록 우리에게 항복하였으나, 군사를 보내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연나라에는 장도를 따르기를 마다하는 무리가 작지 않은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기마를 빌릴 수 있다면 장차 크게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북맥은 동북에 있는 삼한의 족속이며(재동북 삼한지속·在東北 三韓之屬) 동이(東夷)의 하나라고 하니, 바로 옛 고구려를 이룬 족속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요하(遼河) 주변에 흩어져 살던 강대한 기마족으로 때로는 중원의 풍운에도 간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연왕 장도의 다스림 밖에 있는 기마대를 빌려 쓴 일은 나중에 장도가 모반을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지만, 그때의 한왕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도움으로만 느껴졌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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