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상인]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의 ‘위험한 동업’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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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중추 세력 가운데 하나는 지식인 그룹이다. 그것이 군부집단이 아니고 또한 공안(公安)조직도 아니라는 사실은 오랜 권위주의 통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역사적 보람으로 반길 일이다.

게다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과 지식이 힘을 합치는 모습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다. 세상을 아는 것과 다스리는 일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지식인 참여는 한때 대학 교수 중심의 ‘위원회공화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정책 분야에 연계된 인재 풀 정도가 아니라 집권 과정에서부터 정치적 운명을 함께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이로써 많은 ‘운동권 지식인’과 그 주변의 부류들이 정치권력의 막강한 동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1980년대 한국 사회 특유의 간고(艱苦)한 경험이 만들어 낸 강력한 지식 권력이 있다.

돌이켜 보면 1980년 광주는 ‘진보’와 ‘비판’으로 무장한 새로운 지식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이름하여 ‘오월의 지식 권력’이 추구한 학문의 민중적 지향과 좌파적 시각은 불행한 시대의 폭압적 상황이 자초했던 측면이 많다. 반미주의가 시대정신으로 등장하고 주체사상에서 대안을 찾기도 했던 1980년대식 사회의식과 역사인식은, 학문적으로 성숙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불운 탓이라기보다 ‘운동지식’이 가진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학문적으로 실패한 ‘오월의 지식 권력’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걸쳐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부’가 자부했던 ‘수평적 권력 이동’의 역사적 기원, 그리고 ‘참여정부’가 자임하는 ‘주류, 비주류 세력 교체’의 이념적 기반이 다름 아닌 1980년대식 질풍노도(疾風怒濤)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월의 지식 권력’이 맞이하고 있는 철 지난 개화는 민주화 이후 개혁에 대한 ‘과잉 의지’의 일상화, 일부 시민운동의 정치 권력화 및 정보화 시대가 초래한 지식 생산 양식의 대중화 덕분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월의 지식 권력’은 목하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학문 세계 내부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대학을 비롯한 교육 및 문화 관련 단체에 대한 낙하산식 접수는 정도의 측면에서 역대 정권의 그것을 뚜렷이 능가한다는 평가다. 또한 집권 세력과 이른바 ‘코드’를 달리하는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각종 유무형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지식 및 교육 환경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추세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지식 권력과 정치권력 사이의 유별난 유착 관계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집권세력에는 오만과 독선에 의한 판단 착오를 부추길 공산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끼리 학문적 ‘진리’와 사회적 ‘정의’를 동시에 소유한 상황에서는 외부의 어떠한 비판과 충고도 달갑게 들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사가 신문 잘못 탓이고, 만사가 못난 국민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반(反)지성주의의 확산에 따른 학문 세계의 황폐화다. 학문적 논쟁을 인민재판식 여론몰이가 대체하고 수월성과 진정성이라는 학문 고유의 열망 대신 일반 대중에 대한 지적 ‘호객행위’가 성행하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처사는 결국 ‘소경이 제 닭 잡아먹은’ 꼴과 다름없다.

이념과 성향의 차이를 떠나 모든 지식인의 진정한 동업자는 같은 지식인이어야 한다. 무릇 지행합일(知行合一)이란 개인적 차원에서 미덕이 될지도 모르나 사회적 수준에서는 가끔 해악이 되기도 한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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