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기열]19년 묵은 ‘방폐장 숙제’ 이번엔 매듭을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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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로 마감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 신청에 경북 경주 포항 영덕, 전북 군산 등 4개 지역이 신청서를 냈다. 유치 경쟁에 돌입한 셈이다. 지난 19년간 7차례나 시도했던 후보지 선정이 실패로 끝났던 점을 생각하면 크게 환영할 일이며, 지난해 주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부안 사태에 비춰 보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최종 후보지 선정을 위해 11월에는 주민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호전된 느낌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실제 운영 단계까지는 아직도 많은 과정이 남아 있다. 특히 주민투표 과정에서 갈등과 반목이 불거질까 우려되고, 향후 지역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인근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1978년 고리1호기가 가동된 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그동안 방폐장 용지 선정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했고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그리고 주민 간 갈등이 확대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불투명한 추진 과정과 지역 주민에 대한 설득 실패 등이 주요인이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고준위와 중·저준위 방폐장을 분리해 우선 급한 중·저준위 방폐장 용지를 먼저 선정하기로 했다. 또 용지 선정 과정은 지자체의 신청, 정부심사, 주민 투표를 거치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르기로 했다.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전 세계적으로 고준위 방폐장을 운영 중인 나라는 아직 없다. 각국이 용지 조사, 설계 등의 과정에 있으나 빨라야 2010년 이후에나 고준위 방폐장 운영이 가능하다.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 러시아 에너지청, 민간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제 고준위 방폐장’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반면 중·저준위 방폐장은 원전 가동국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다. 아직 용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벨기에, 네덜란드 등 소수에 불과하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고체와 기체, 액체의 형태로 발생된다. 이 중 기체와 액체 폐기물은 방사성 물질을 걸러 낸 뒤 발전소에서 다시 사용하거나 인근 바다나 대기로 방출된다. 따라서 이번에 선정되는 용지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중에서도 고체 폐기물만이 저장된다. 고체 폐기물은 방사선 작업자들이 사용했던 작업복, 공구, 휴지, 고형화한 농축폐액 및 여과제, 이온교환수지 등이다. 이 고체 폐기물들은 드럼에 담아 방폐장에 저장된다.

고리 원전이 가동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인근에서 생산되는 기장 미역은 여전히 지역특산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은 원전 인근 중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전입자가 증가하는 것은 ‘원전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의심하게 한다.

일본의 로카쇼 촌 방폐장 인근 지역은 낙농단지로 여기서 생산되는 우유가 일본 전체 수요의 40%를 충당한다. 프랑스의 로브 방폐장 주변은 관광뿐 아니라 샴페인을 만드는 포도 산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도 특별법에서 유치 지역에 다양한 지원을 하도록 보장하고 있고, 특히 이번에는 한국수력원자력본부가 이전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방폐장 문제는 쓰레기 매립장이 없어 가정에 쓰레기가 넘쳐 나는 사태와 별로 다르지 않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원전을 일정 수준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은 초고유가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리고 원전을 운영하면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 19년간 끌어 온 묵은 숙제를 이번에는 풀어야 한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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