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승함/홍보형 대통령비서실장 안된다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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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사의를 밝혔고 청와대는 후임으로 이병완 대통령홍보문화특보를 내정했다고 한다. 25일로 참여정부가 집권 반환점을 돌아선다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인물 교체 차원을 넘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을 구현할 청와대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과거 대통령비서실장들은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때로는 대통령을 보좌하기보다 행정부 및 국회를 통제하고 언론과 기업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인(人)의 장막을 형성하여 스스로가 대통령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추종적 관료형의 비서실장들도 있었다. 이들은 권력추구 없이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그림자 역할을 했지만 효율적이며 창의적인 업무 수행을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정보와 조언을 제한하고 무사 안일한 임기응변 대책만을 강구해 국정운영을 파탄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사실 대통령비서실의 역할과 기능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비서실은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 대안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비서실은 대통령의 개인 보좌진으로서 대통령이 신임하는 측근들로 구성되는 것이 통례이며 그 역할은 대통령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이와 같이 형성되는 비서실은 적지 않은 경우에 합리적인 팀플레이를 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신임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 이는 정보를 왜곡하고 정책 대안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대통령은 보좌진에 의해서 주변 환경과 현실에서 고립된다. 한국정치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는 사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열린 비서실’ 모형이 이상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국정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기관의 보고를 청취했으며, 주요 정부 기관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얻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열린 비서실 체제를 갖추더라도 대통령은 업무 과다와 시간 제약으로 한두 사람의 조언자에게 더욱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통령비서실장은 본인 스스로를 포함하여 대통령이 한두 사람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열린 체제를 잘 유지하여 합리적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한다.

요즘 대연정, 선거제도 개편, 국가 범죄 공소시효 배제 제안 등으로 정국이 어지럽다. 대부분 노 대통령이 제기한 이슈다. 하지만 말이 앞서다 보니 대통령 말에 귀 기울이는 이가 적어지고 있다. 여기에 재·보선, 지방선거, 차기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자칫 정부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임 비서실장이 맞닥뜨려야 할 과제다.

노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를 맞아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이며 이를 잘 보좌할 수 있는 정무·홍보형 비서실장을 임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분권형 정부로의 개혁을 표방하는 현 정부로서는 오히려 관리조정형의 비서실장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중심의 정책 결정 및 집행에서 벗어나 내각 중심의 책임 행정을 구현하고 행정부 내의 이기주의와 분파주의를 조정하며, 국회 및 사법부, 언론과 기업, 사회단체 등과의 정책 협력 및 조정을 위해서 관리조정형의 비서실장이 필요하다. 정무와 홍보에 너무 치우치면 열린 비서실 체제를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민 통합’이 주요 과제로 부각된 정치 현실이다. 대통령비서실 역시 다양한 여론이 수렴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학 교수·국가관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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