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석동빈]‘감시시스템 부재’ 드러낸 항운노조

  • 입력 2005년 3월 20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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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운노조의 비리는 파헤칠수록 점점 더 악취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항운노조의 부패상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항구도시에서 귀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익히 들었을 만큼 오랫동안 쌓여 온 문제였다.

그런데도 그동안 정부와 사정 당국, 정치권은 항운노조 문제에 대해 일부러 ‘눈과 귀를 막은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비근한 예로 이번 사건 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양심선언의 주인공인 전 항운노조 간부 설만태(46) 씨는 2003년 항운노조의 비리를 부산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2004년 5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만약 설 씨가 부산고검에 항고하지 않았고, 양심선언의 내용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진행되었을까.

정치권도 항운노조 문제를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한 조합원들은 “노조가 수많은 비리 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관계에 대한 엄청난 로비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항운노조는 그동안 위원장 출신 국회의원을 여러 명 배출했고, 대선과 총선 때마다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조합원들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펼쳤다. 인천에서는 위원장 출신 국회의원 후보 연설회에 조합원을 동원하느라 아예 하역작업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부산항운노조는 최근에도 여당 의원을 명예고문으로 위촉하는 등 권력에 줄 대기를 해 왔다. 일부 유력 정치인도 노조 집행부의 조직력과 영향력에 유혹을 느껴 밀월관계를 맺으며 ‘상부상조’를 도모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막상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조합원들의 권익 보호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조합원 김모(38) 씨는 “채용 및 인사 커미션이나 공금 횡령은 그러려니 했지만 피땀 흘려 번 임금까지 착복한 의혹이 있다니 어이가 없다”며 분개했다.

항운노조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감시 시스템에 여전히 큰 허점이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 같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 출범하게 될 노조 집행부는 보다 투명하게 노조를 운영해야 한다. 노조원들 또한 스스로의 권익을 지키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석동빈 사회부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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