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능후]근로빈곤층, 정부가 도와줘야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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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여기 3명의 빈곤한 사람이 있다. 갑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잦은 실직과 저임금으로 허덕이며 살고 있다. 을은 과거에 열심히 일을 했지만 지금은 퇴직하여 어려운 생활을 겨우 꾸려가고 있다. 병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어 평생 일다운 일을 해보지 못한 채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질문 첫째, 국가와 사회는 이 세 사람 중 누구를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까. 둘째, 이 세 사람 중 누가 상대적으로 나은 생활을 해야 할까.

19세기 이후 서구의 복지국가 역사는 두 질문에 대해 공통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갑 을 병 순으로 돌보았고, 물질적인 삶의 여유도 갑 을 병 순이라는 것이다. 즉, 현업근로자가 노동운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보장받았고, 다음 국가가 연금제도 등을 통해 퇴직자의 소득을 보장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공공부조와 수당제를 활용하여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돌보아 온 것이다.

▼사회보장 못받는 취약계층▼

이처럼 근로빈곤층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숙제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비조직 근로자거나 영세자영업자로 구성되어 있어 그동안 사회적 관심조차 크게 끌지 못했다. 수시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가구소득이 빈곤선 주변을 맴돌며 어렵게 생활하는 근로빈곤층의 규모는 직접 대상자가 130만여 명, 그 가구원을 합하면 전인구의 10% 정도인 400만여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근로빈곤층의 생활이 절대빈곤층 못지않게 어려운데도 현행 사회보장제도에서는 이들을 제대로 돌볼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빈곤대책의 근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에 처한 가구에만 급여를 준다. 소득이 빈곤선 주변을 맴도는 근로빈곤계층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근로빈곤층은 일반근로계층이 빈곤계층으로 침하하기 전에 거쳐 가고, 역으로 빈곤계층이 자립하는 과정에서 이를 거쳐 일반근로계층으로 상승해 가기 때문에 빈곤과 자립의 중간지대라 할 수 있다. 이는 근로빈곤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빈곤양상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근로빈곤계층의 다수가 생산계층으로 자립해 나가면 빈곤인구가 줄고 경제전반의 인적자원도 증대되지만 이들이 비경제활동의 절대빈곤층으로 침하하게 되면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게 된다.

정책적 방안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다. 일자리 제공은 기업과 국가가 할 일이지만 일자리에 걸맞은 기술습득은 개인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기업은 일자리를 제공함에 있어 단기적인 수익 쟁취에 골몰하여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존 공영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여야 한다. 국가는 직업훈련 기회제공을 대폭 확대하고, 간병 요양 보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괜찮은 일자리를 직접 제공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인적자본개발을 위한 개인의 노력책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일자리제공-소득보전을▼

둘째,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도 근로소득이 빈곤선을 밑도는 가구의 경우에는 정부가 일정부분 소득을 직접 보전해 주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기존의 보충급여방식이 아니라 근로소득이 많을수록 급여액이 많아지는 적극적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작금에 논의되고 있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정책과제라 하겠다.

박능후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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