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수]개혁에 발목잡힌 조세정책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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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세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정책 유예기간은 고작 보름에 불과하니, 그동안 오락가락한 정부정책으로 인해 국민만 혼선에 빠지게 됐다.

물론 양도세 중과세는 종합부동산세의 신설 등과 함께 이미 지난해 이른바 10·29대책의 일환으로 검토되어 온 것들이긴 하다. 그러나 최근의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부동산 보유세가 강화되는 만큼 거래세인 양도세 중과세는 ‘퇴로’를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그 실시 시기를 연기하자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도 나왔지만 청와대는 결국 ‘강행’을 선택했다.

▼부동산 거래막는 양도세 중과▼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부가 양도세 중과세 방침을 확정하면서 ‘시행 후 실태를 점검해 보완 여부를 검토한다’는 토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시행하고 문제점이 나타나면 고치겠다는 것이니, 이는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이런 식으로 시행해도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양도세 중과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거래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주택에 대한 토지와 건물 통합재산세 등의 관련법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양도세 중과는 이러한 법안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결과를 보고 실시해도 문제될 게 없다. 보유과세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등록세나 취득세 등의 거래세가 내려야 다주택 소유자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 수 있을 것 아닌가.

따가운 여론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정부가 양도세 중과방침을 확정하고 보유과세를 강화하는 이유는 이른바 개혁추진이라는 명분을 버릴 수 없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집권 동안 부동산 세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부의 불균형과 과세의 불공평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부동산에 대한 각종 세금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최근 국회에서 심의 중인 종합부동산세법안도 공평과세의 명분에 집착하는 ‘개혁조급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법이 조속히 통과되지 않으면 거래세 인하도 어려우며 재산세 부담도 늘어나므로 내년에 조세대란이 우려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지가 앞서 입법을 서두르다 보니 실제 정부입법이면서도 입법예고 등의 국민여론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당의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라기보다 정부와 내통하는 존재쯤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정부의 무리한 예산편성으로부터 국민의 호주머니를 지키는 국회의 기능은 실종되고 민생은 욕설과 고함 속에 묻혔다.

양도세 중과세나 종합부동산세의 신설을 부유층만의 문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민들의 삶 또한 고용불안, 가계부채와 늘어나는 재산세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지수동향’을 보면 전국 가구의 한달 평균 소득은 288만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7.3%(19만6000원) 늘었다. 그러나 소비는 5.7%(9만4000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이유는 세금 연금 보험 등 비소비성 지출이 증가한 까닭이며 특히 주범은 올해 크게 늘어난 재산세다.

▼재산세 늘어 민간소비 위축▼

정부는 개혁과 공평과세를 금과옥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세금정책은 공평과세 이전에 납세자의 담세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본래 세금이란 개인과 기업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한 과실의 일부를 국가가 미안한 마음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민간의 자유로운 소비와 투자, 저축을 막는 게 세금이어서는 안 된다. 개혁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년에는 제발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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