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여성부의 ‘성폭력’ 겉핥기 조사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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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1시 반 울산 남구 옥동에 있는 ‘생명의 전화’ 울산지부 부설 가정성폭력상담소 사무실. 경남 밀양지역 고교생들의 10대 여학생 집단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여성부 조사단 2명이 상담소 직원과 피해자 A 양(14·중3)의 가족을 만났다.

조사단은 이 자리에서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피해자 지원 방안 등에 대한 건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단은 두 시간 동안 조사한 뒤 사무실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은 조사단이 여성 피해자의 인권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울산남부경찰서를 방문할 줄 알고 승용차를 뒤따랐다. 하지만 승용차는 울산시청으로 향했다. 시청에서 불과 2, 3분 거리에 경찰서가 있지만 조사단은 이곳엔 들르지 않았다. 울산시 복지여성국장과 30여 분 만나고는 곧바로 항공편으로 상경했다.

여성부는 경찰서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찰의 수사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한 것이 아니다”며 “다만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수사과정상의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호소가 있으면 관련 기관에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부분에 대한 조사는 타 부처 소관이라는 뜻이다.

여성부는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로 ‘가정 폭력,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라고 홈페이지에 명시해 놓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보호 방법 등을 상세하게 기술한 437쪽짜리 책자를 2002년 12월 일선 경찰서와 상담원 등에게 배부한 곳도 여성부다.

따라서 기왕 현지 조사에 나섰으면 경찰서로 달려가 ‘인권침해 현장’을 살펴보고 담당 형사와 피의자들도 만나 보는 게 순서 아니었을까.

이날 조사단의 울산 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한 여성단체 회원은 “당연히 경찰서를 방문해 진상조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쳐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한 누리꾼(네티즌)은 14일 여성부 홈페이지에 “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여성부가 손댈 곳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인데 제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2001년 1월 독립 행정부처로 출범한 여성부가 앞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볼 일이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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