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그래도 희망을 버리진 말자

  • 입력 2004년 12월 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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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풍경은 때로 기묘한 체험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쪽 좌석에서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더 이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아주머니, 팔짱을 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내, 전력을 다해 생을 살아가기에 삶이 고되고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듯한 얼굴이다. ‘다 태워버린 성냥개비’ 같은 얼굴. 고향을 잃어버린 자들은 국외자처럼 배회하며 이 거대한 자본의 회로 속에서 익명의 노동력으로 환원될 뿐이다.

▼한해의 끝에서 지친 얼굴들▼

오늘 늦은 아침 지하철에 앉아 있는 젊은 부부를 보았다. 아내는 남편의 양복 깃을 털고 넥타이의 매무새를 고쳐주고 있었다. 남자의 양복은 유행이 한참 지나 약간은 빛이 바래 보였다. 남자는 어색하게 상의를 추스르며 아내와 나직한 말을 주고받았다. 긴장하고 상기되었지만 미량의 희망이 젊은 부부의 얼굴에 감돌기도 했다. 남편은 어느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인 듯했다. 지하철이 한강을 통과하자 햇살이 창가에서 쏟아졌다. 슬프게도 아내는 젊고 만삭이었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지만 우리는 영원히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를 낳고 키워준 그 따뜻한 흙을 그리워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낯선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 낯모르는 사람과 사소한 시비가 붙자 남자는 품에서 칼을 꺼내 상대방을 찌르고 도망갔다. 어떤 노점상은 행인이 물건을 안 산다고 그를 따라가 악다구니를 쓰며 그를 때려눕히고야 말았다. 서울 강남역 근처에 15분만 서 있어 보라. 동냥하면서 적선을 구하는 이들을 다섯 명은 족히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유리 조각 같은 분노를 키우고 있었으니 그것은 언제라도 비죽하게 튀어나와 무기가 될 수 있다. 1980년대 시인 기형도는 최루탄과 화염병의 광장에서 플라타너스 잎사귀마저도 무기가 되는 시대라 노래하였던가. 이제 무기는 마음속에서 싹을 틔워 적의를 키워냈으니 이 겨울, 우리의 도시는 끝없이 보이지 않는 무엇과의 ‘전쟁’ 속에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을 해도 취업을 할 수 없고 농민은 김장철이 되었는데도 배추밭을 갈아엎었다. 공무원시험 학원이나 교사 임용시험 학원이 북새통을 이루고 과잉경쟁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입시 부정, 국가자격증 시험 부정에 스스럼없이 자신을 던졌다. 공장은 문을 닫고 물건을 더 이상 만들려 하지 않는다. ‘연말연시는 불우한 이웃과 함께’라는 로고가 도로변에 붙어 있지만 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익숙한 헌옷 같다. 술에 취해 늦은 밤거리를 비틀거리면 언제 ‘아리랑치기’ ‘뻑치기’를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민심은 흉흉하고 풍문은 찢어진 벽보처럼 나돌아 다녀도 정부는 여전히 정치적 편 가르기, 정략적 문제들에 여념이 없다.

올해 서점가에서 최고 히트를 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미 출간된 지 몇 해가 지난 책이 갑작스레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각박해진 사람들의 마음이 영혼의 연금술을 불러들인 것이다. 저 우주의 신(神)으로부터 지금 이곳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싶은 자기위안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서로의 온기로 이 고통 극복을▼

한 해가 가고 있는 이 추운 겨울에 나는 지하철에서 본 그 소박한 젊은 부부를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서로를 보듬어줄 따뜻한 온기밖에 없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만져주는 모습을 생각한다. 다시 솟아오르는 새해의 밝은 해처럼, 갓난아기를 안고 있을 그 희망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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