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막중]옮기려 말고, 만들게 하자

  • 입력 2004년 11월 1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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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행정특별시’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충청권에 대한 배려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런 대안들이 땜질식 응급처방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지방의 자생적 발전을 견인하는 구조적 처방이 되기 위해서는 차제에 지역균형발전의 접근방식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 정책철학과 원칙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부처·대학 지방이전은 제로섬게임▼

첫째, 기존의 기능을 이전하기보다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내는 ‘가치창출형’ 지역균형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한 지역의 기능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시도는 국가 전체적으로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라 수도 또는 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경험했듯이 기능을 떼어주는 곳과 받는 곳 사이의 갈등이 만만치 않고, 수혜 지역들 사이에서도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배분 받느냐를 놓고 형평성 시비가 일기 쉽다.

이제 지역균형발전은 비수도권에 새로운 기능을 창출, 육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국가 전체적으로 ‘플러스섬 게임’을 지향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학도시와 관련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발상보다 지방에 제2, 제3의 포항공대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과 같은 명문대학을 많이 육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서울의 명문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오히려 지방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마저 막아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둘째,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는 ‘지방주도형’ 지역균형발전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실패한 것은 중앙정부에 의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자원 배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포장만 바뀌었을 뿐 각 지방이 먹고살아야 할 산업과 기능을 일일이 중앙정부가 배정해주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에 신도시를 건설해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해 준다고 한들,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과 재원을 움켜쥐고 있는 한 지방은 항상 자신의 운명을 중앙정부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지방이 지역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중앙정부로부터 자원을 더 많이 타내기 위한 경쟁에 매달리는 것이라면 지역안배식, 나눠먹기식 자원 배분의 관행도 탈피할 수 없다.

이제 지방 스스로 자기 고장의 발전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 중앙정부 부처를 특정 지역에 떼어주는 것보다 그 부처의 기능을 모든 지방정부에 넘겨주면 더 이상 지방이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며 지역발전을 읍소(泣訴)할 필요가 없다.

기업도시도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주체가 되어 추진해야 한다. 지방정부 스스로 지역 고유의 특성과 자원에 기초해 장래 육성할 산업을 결정하고 이에 맞는 기업을 직접 유치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시를 중앙정부가 지정하면 특정 지역이나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권한 이양 지역주도 발전을▼

셋째, 공공의 일방적 강요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민간참여형’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은 공공의 정책적 의지만을 갖고 달성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민간 경제주체들이 적극 동참해 주어야만 실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제 지방은 중앙정부가 아닌 기업을 향해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각 지방이 스스로 기업하기에 좋은 지역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권한과 재원을 이양해 지방정부간 경쟁을 유도함과 동시에 낙후 지역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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