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원택]내년 추석은 나아지려나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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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모처럼 만난 친지, 친구들과 반가운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럴 때마다 듣기 싫거나 대답하기 꺼려지는 말들도 있다. 노처녀, 노총각이라면 어른들로부터 듣게 되는 “시집 안 가니”, “장가가야지” 하는 질문이 늘 부담스럽다. 그러나 요즘처럼 먹고살기 어려운 때에는 오히려 “취직은 했느냐”, “장사는 잘되느냐” 하는 말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말일 것 같다. 지금 좀 힘들어도 차차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조차 갖기 어려운 요즘 상황에서 친지들이 던진 이런 덕담을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조차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덕담 나눌 여유조차 없는 民心▼

그래서 이번 추석 연휴 동안 가장 말하기 꺼렸던 이야깃거리는 무엇보다 정치 관련 주제였을 것 같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분통을 터뜨리거나 짜증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아서 명절의 흥을 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기간에 TV 뉴스에서도 국내 정치 소식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명절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방송사측의 배려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치 이야기가 추석 명절의 술안줏거리조차 될 수 없을 만큼 국민들이 보기에 정치는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괴리되어 있는 것 같다.

야당이라고 특별히 더 나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당에 있다.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도 좋고 변화도 필요하다. 그것이 2002년 우리 사회의 선택이었고 17대 총선에서 다시 확인된 민의였다. 그러나 17대 총선이 끝난 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은 분명히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월급쟁이는 월급쟁이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어느 누구도 행복해하거나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개혁이라고 말은 많았지만 그동안 제대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어 낸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많은 국민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이뤄놓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업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아직 평가가 이른 감은 있지만 그동안 온통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것에 비해 이룬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사실은 불만의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국민들이 피곤해하고 짜증스러워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 대통령의 정책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과거의 바벨탑을 허무는 데에 정성을 들이는 것에 비해 우리가 지금부터 쌓아올려야 할 새로운 시대의 희망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혁은 과거형에만 머물 수는 없다. 지금 어려워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현실이 이만큼 짜증스럽고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제시하는 경제성장률과 같은 각종 수치가 공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죽었던 박정희를 다시 살려낸 것은 역설적으로 노 대통령 자신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달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내년 추석에는 좀 더 밝은 표정으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을 다시 찾고 싶은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좀 나아지기는 할 것인지, 그런 꿈이나 기대감은 가져도 되는 것인지. 이런 착잡한 생각들이야말로 어떤 고귀한 명분보다 이번 명절 기간 중 노 대통령과 집권당이 귀 기울여야 할 가장 절실하고 다급한 민심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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