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폐단위 변경’ 왜 서두르나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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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 12명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고, 1환을 100전으로 나누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국은행은 화폐단위를 변경하기 위한 세부 실천방안까지 마련했다. 부정적 견해를 보여 온 정부당국자들도 최근 들어서는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다.

화폐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꾼 1962년과 비교할 때 각종 경제활동 규모는 대부분 100배 이상 커졌다. 그러다보니 금액을 표시하는 자릿수가 너무 길어져 계산과 회계처리 등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2009년경에는 세계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경(京)’ 단위까지 일부 통계에 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따라서 화폐단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수표 발행 비용도 만만찮다.

그러나 화폐단위 변경에는 또 다른 비용과 부담이 발생한다. 자산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3억원 재산이 하루아침에 30만환이 됐을 때 국민이 느낄 심리적 상실감도 클 것이다. 또 0.8환이나 0.9환짜리 가격이나 요금이 가볍게 1환으로 오르면서 생활물가가 들먹일 소지도 크다. 화폐단위 변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자산의 해외 이탈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지금은 실물경제를 살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화폐단위 변경을 서두를 만큼 경제여건이 좋지 않다. 투자와 소비심리가 극도로 움츠러든 마당에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심리까지 가세하면 경제회복이 더 늦어질 우려가 있다. 경제의 체력을 좀 더 회복하고 물가도 안정됐을 때 화폐단위 변경문제를 차분히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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