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원암]화폐개혁? 국민은 불안하다

  • 입력 2004년 9월 19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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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과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른 국민들이 최근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등장한 화폐개혁 논의에 당혹해 하고 있다.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화폐개혁은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행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불거진 관계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단위 바꿔야 국가위신 올라가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폐개혁은 참여정부 출범시 한국은행에 의해 정책과제로 제기된 바 있다. 5만원, 10만원짜리 고액권 발행과 원화의 단위를 1000분의 1로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준비하고 있던 한국은행은 참여정부의 정책과제로 화폐개혁을 추천했다. 그러나 고액권 발행이 부패를 조장하고 리디노미네이션이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로드맵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여당과 정부가 느닷없이 화폐개혁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180도 선회한 배경을 선선히 이해할 수 있어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원화의 달러당 환율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주변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원화의 국제적 위신을 낮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1원을 구경하기 힘들고 100원을 잔돈으로 생각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렇게 1000원이 거래단위가 되다 보니 조(兆) 단위 숫자에 익숙해져 있고 몇 년 있으면 경(京) 단위 숫자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높은 계산단위로 인한 국민적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화폐 단위를 1000분의 1로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화폐 단위를 변경하게 되면 새로운 화폐를 찍어야 할 뿐만 아니라 현금 사용과 관련된 자판기, 현금교환기와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바꾸는 데에도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또한 물가불안심리가 팽배한 경제에서는 새로운 화폐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지 못해 인플레가 더 심화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용과 편익으로 나누어 보면 정부와 여당이 갑자기 화폐개혁을 거론한 배경도 이들이 뒤늦게 화폐개혁의 편익을 인식한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의 경우를 보면 화폐개혁의 손익 설정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일본의 여당 내 화폐개혁 찬성론자들은 화폐 단위 변경으로 인한 엔화의 국제적 지위 상승과 새로운 화폐 발행에 따른 자판기, 화폐 관련 기자재 교체 등 새로운 수요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해 일본은 45년이 지나도록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인들도 화폐개혁에 따른 국가위신의 상승과 내수확대를 과대평가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국가 위신은 달러화와 원화를 1 대 1로 교환한다고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위신을 높이려면 국가의 생산성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화장을 잘 한다고 미인이 될 수 없듯이 화폐개혁을 한다고 해서 선진국들과 겨룰 수 없다. 또한 화폐개혁에 따른 자판기나 현금교환기의 교체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로 인해 관련 산업이 살아날 것을 기대한다면 그 효과는 일시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막대한 비용… 효과는 일시적▼

화폐개혁은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보다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게 진행돼야 한다. 설사 몇 년 후 경 단위가 등장하더라도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1962년에 갑작스럽게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산업자금까지 조달하려 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의 화폐개혁은 물 흐르듯이 진행되면서 믿음을 주는 개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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